기자칼럼

[취재수첩] 빛 바랜 삼성 반도체…그럼에도 이재용에 환호하는 이유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 화성 공장. [ⓒ삼성전자]
삼성전자 화성 공장. [ⓒ삼성전자]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가 어렵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 진짜 어렵다."

반도체 업계를 취재하면서 한 업계 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80~90년대생들은 '우리나라는 반도체 산업이 먹여 살린다' 라는 말을 한 번쯤 들을 정도로 간접적으로나마 반도체 호황에 대해 느껴봤을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경기 불황 등으로 '어렵다, 어렵다'라는 말을 들어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업계에 들어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번에는 뭔가 다르게 느껴지고 있다. 대내외적인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것이 확실해 보이기 때문이다. 실적, 기술, 사업 점유 등 여러 측면에서 상황이 좋지 않다.

실적 측면에서 DS(반도체) 사업 부문을 떼놓고 보면 올해 3분기까지만 벌써 누적 적자가 12조6900억원을 기록한 상태다. 영업손실 4조5800억원, 2분기 영업손실 4조3600억원, 3분기 영업손실 3조7500억원을 기록했는데, 4분기에도 적자 흐름이 유지 돼 올해는 창립 이래 연간 최대 규모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실적은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침체, 대다수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해 넘어가더라도 기술, 사업 점유가 흔들리는 것은 뼈아프게 다가온다. 삼성전자가 압도적인 1위 자리를 지켜왔던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선 최근 들어 위상이 흔들리는 일들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

먼저 HBM(고대역폭 메모리)의 경우, 삼성전자는 경쟁사인 SK하이닉스와 비교해 계속 한발씩 늦어지고 있다. 2013년 SK하이닉스가 세계 최초로 1세대 HBM을 개발한 이후, 삼성전자는 2년 뒤인 2015년 2세대 HBM 개발에 성공했다. 이후, 3세대, 4세대 양산도 1년씩 늦었다. AI(인공지능) 시스템 시장의 확대로 HBM 수요 확대가 본격화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우위에 서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엔 삼성전자가 우위를 점하고 있었던 D램 서버 시장 점유율도 최근 SK하이닉스에게 따라잡혔다. 시장조사기관 트랜드포스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3분기 D램 서버 시장에서 18억5000만달러 매출 기록, 13억 1000만달러를 기록한 삼성전자를 크게 앞섰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제외하고도 점유율 50%를 달성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도 녹록지 않다. 인텔은 미국 정부의 반도체 리쇼어링(해외에 나간 기업이 국내로 돌아오는 것) 정책에 힘입어 초대형 투자를 이어갈 계획을 세우며 삼성전자를 뒤쫓고 있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외부 고객사 유치, 파운드리 업계 2위에 올라서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먹여 살린다던 반도체 사업 선봉에 선 '삼성전자'가 이렇게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사실 이재용 회장의 '책임론'은 언제 떠올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책임론보다는 이 회장을 향한 '국민적 관심'과 '응원'은 더 커지는 모습이다.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과 부산 국제 시장 방문 중 한 시민을 향해 '쉿' 제스처를 하는 모습은 장안의 화제가 됐다. 작은 제스처 하나에도 시민들이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재벌가이어서보다는 이 회장을 비롯해 선대 회장들이 보여준 '뚝심', '한방'을 기대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에 부응 하듯 이 회장도 엑스포 유치전 등 대내외적으로 바쁜 상황에서 사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 한국-네덜란드 정상회담 자리에서 삼성전자와 네덜란드 ASML은 1조원 규모의 공동 투자 계약 성사, 국내에 연구개발(R&D) 센터를 설립하기로 한 것이 그중 하나다.

ASML은 전 세계에서 반도체 미세 공정에 필요한 노광장비(EUV) 장비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다. 파운드리 사업 부문에선 EUV 장비를 누가 먼저 들여오느냐에 따라 사업 향방이 정해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EUV 장비 중요하다. 삼성전자가 2~3나노미터(nm) 공정에서 1위 TSMC와 격돌이 불가피한 만큼, ASML과의 협업은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협업을 계기로 EUV 장비를 잘 들여온다면, 2~3나노 경쟁에서 TSMC를 바짝 따라붙을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리스크에 둘러 쌓인 상황에서도 국가를 위해 헌신할 뿐만 아니라 성과까지 가져오는 것이 사람들이 이 회장에 열광하는 이유 중 아닐까 싶다. 그의 바람 중 하나였던 온전히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준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된다.

배태용 기자
tyba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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