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내년에도 숨 가쁜 AI 시장…주목할 만한 키워드는?
[디지털데일리 김보민 기자] 2023년은 인공지능(AI)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해다. 지난해 챗GPT가 등장한 이후 AI 시장의 제2막이 열렸고, 관련 기술에 대한 정의와 각종 규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24에는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빅테크와 스타트업 간 협력, 그리고 홀로서기는 더욱 가속화되고 생태계 변화도 잦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AI 발전과 함께 그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 산업에서도 전략적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와 내년도에 주목할 만한 내용을 키워드를 10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 2023년 "AI 판도 뒤집기 온 힘"
흐름 제대로 뒤집은 생성형
그동안 AI는 단순 '신기한 기술'로만 여겨졌다. 공상과학(SF) 영화에만 등장할 뿐, 실제 일반인들이 활용할 만한 AI 기능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챗GPT가 나온 이후 시장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학습 데이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생성형 AI가 떠오른 것이 영향이 컸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고유 역량으로 여겨진 창작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키웠다. 단순 텍스트뿐만 아니라 음성, 영상, 사진까지 모두 인식해 작동하는 멀티모달 모델이 등장하면서다. 사용자는 별도의 개발 지식 없이도 노코드, 로우코드 방식으로 AI 기능을 활용하고, 나아가 AI 자체를 개발할 수 있게 됐다.
멀티모달 바람은 특히 챗봇 시장에 변화를 일으켰다. 챗GPT의 경우 사용자가 프롬프트에 글자를 입력하는 것을 넘어 사진, 음성, 영상으로 AI와 소통할 수 있도록 진보했다. 자전거 사진을 입력한 뒤 '안장 높이를 낮추는 방법을 알려줘'라고 질문하는 식이다.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파트너인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 코파일럿에 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멀티모달 흐름에 주요 빅테크 기업 또한 멀티모달 기반의 거대언어모델(LLM)은 물론, 관련 AI 챗봇을 구현하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구글은 해가 넘기 전 멀티모달 AI '제미나이'를 공개했고, 바드 등 자사 챗봇에 해당 모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도 외산 모델 혹은 자체 모델을 내세우는 스타트업들이 늘고 있다.
의료, 금융, 교육으로 뻗은 버티컬 AI
그러자 산업별 혁신은 계속됐다. 기존 서비스와 제품에 새로운 AI 기능을 접목하면서 사용자와 고객의 편의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 속도가 빠른 곳은 의료 분야였다. AI는 진단은 물론, 약물 개발 등 의료 영역에서 발전을 이끌었다. 금융 분야에서는 AI 기반 사기 탐지 솔루션과, AI 알고리즘 기반 거래 추천 서비스 등을 운영 중이다. 교육 분야에서는 맞춤형 학습 경험을 추천하고 교육생을 평가하는 데 AI를 활용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2025년 적용을 목표로 AI 디지털교과서가 개발되고 있다. 모빌리티 분야에서도 AI 바람이 불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는 완전자율주행시스템(FSD)을 개발하는 데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
개방형 vs 폐쇄형 불 지핀 오픈소스
이렇게 생성형 AI 열풍이 분 가운데 오픈소스에 대한 중요성도 부각이 되었다. 오픈소스는 소스코드를 무료로 제공해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정 및 배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뜻한다. AI 개발 환경을 '개방형'으로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며, 통상 라이선스 비용과 저작권 문제가 없어 AI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AI 모델이 활용한 데이터 정보와, 결과물에 대한 배경 정보 또한 제공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AI를 구축하는 데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특히 LLM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개발자는 오픈LLM을 가져와 파인튜닝을 거쳐 원하는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현재 세계 오픈소스 시장을 상징하는 대표주자로는 딥러닝 프레임워크 분야의 파이토치, 텐서플로, 케라스 그리고 자연어처리(NLP) 라이브러리 분야의 허깅페이스, 엔엘티케이 등이 있다. 국내에서 자주 거론되는 허깅페이스의 경우 주요 투자자로 구글, 엔비디아, 아마존, 퀄컴, 세일즈포스 등을 두며 입지를 넓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국판 허깅페이스라고 불리는 '오픈 Ko-LLM'이 운영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의 동참도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메타와 IBM 등 50개 글로벌 기업 및 기관은 'AI 연합'을 구축해 LLM을 오픈소스로 제공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만 오픈소스 AI에 대한 모델 유출, 보안 위험 등의 문제를 제기하며 소프트웨어를 외부에 공유하지 않는 폐쇄형 진영도 몸집을 키웠다. 오픈AI, MS, 구글은 폐쇄형 진영에 속한다. 오픈AI의 경우 이미 GPT-5 모델 개발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쾌? 그보다 모호했던 골짜기
AI 생태계가 커가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는 로봇이 어설프게 사람을 닮았을 때 불쾌감이 증가한다는 이론으로, 고도화된 AI 기능을 거론할 때에도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과 유사하지만 아직은 서툰 어조와 말투를 구사하는 AI 기능이 늘어난 탓이다. 특히 기업과소비자간거래(B2C) 환경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어색한 표정을 짓는 AI에 대한 거부감은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불쾌한 골짜기를 논하기보다 '모호한 골짜기'를 지적하는 사례가 잦았다. 초거대 AI 등 새로운 용어가 다수 탄생했지만, 저작권과 개인정보 보호 등 각 국가에 특화된 세부 가이드라인은 아직 실효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탓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한국인 얼굴을 딴 이미지 데이터셋을 구축했더라도 개인정보보호법의 금지 조항으로 인해 데이터를 판매할 수 없는 상황도 빚어지고 있다. 기업들이 한국인 얼굴 이미지를 해외 업체에서 사는 경우도 있어 주도권에 대한 논쟁도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국내 업계와 소통 테이블을 마련해 법률 개정과 가이드라인 마련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부머와 두머의 등장
이처럼 2023년 AI 분야는 흥분과 혼돈이 공존하던 해였다. 기술 발전에 대해 여러가지 의견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해이기도 했다. AI 시장을 바라보는 이들의 성향을 '부머'(Boomer)와 '두머'(Doomer)로 나누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부머는 AI의 잠재력에 주목하며 기술 확대에 속도를 내자는 일종의 '개발론자'를 의미한다. 반면 두머는 AI 발전이 인류에 끼칠 위협을 고려하며 신중한 개발을 지지하는 '파멸론자'를 뜻한다. AI 원천기술을 만드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내부에서 부머와 두머로 진영이 갈려 논쟁을 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게 되었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축출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올트먼은 11월 17일 이사회의 결정으로 해임되었다가 닷새 만인 22일 복귀를 결정했다. 평소 이사회와 올트먼은 AI 개발 속도에 있어 의견이 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이사진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범용AI(AGI)가 인류를 위협할 가능성을 우려했지만, 올트먼은 AI 개발에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던 상황이었다. 다만 오픈AI의 대주주인 MS가 올트먼을 영입하겠다고 엄포를 놨고, 투자자들과 직원들이 복귀를 요구하며 이사회는 백기를 들게 되었다.
◆ 2024년 "주도권 싸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내년도 AI 시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올해 주요 국가들과 기업들 사이에서 주도권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내년 안에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다른 국가에, 또는 경쟁사에게 경쟁력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는 분위기다.
곳간 채우고 비우고 투자 레이스 계속
일단 내년도 AI 시장은 생성형 기술을 중심으로 몸집이 커질 전망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시장조사업체 IDC는 생성형 AI 솔루션에 대한 기업발 투자가 올해 194억달러(약 2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는 투자 규모가 두 배로 증가하고, 2027년에는 1511억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릭 빌러즈(Rick Villars) IDC 월드와이드 리서치 그룹 부사장은 "IT 역풍에도 불구하고 올해 기업들은 비즈니스 혁신을 이루기 위해 생성형 AI에 관심을 쏟았다"라며 "내년에는 기업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한다는 취지로 대규모 신규 투자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모든 곳에서 AI 전환이 중요한 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IDC는 기존에 IT 혁신을 상징했던 클라우드보다 AI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을 것으로도 예측했다. 특히 하드웨어, 서비스형 인프라(IaaS), 시스템 인프라 소프트웨어(SIS) 등 다방면에서 AI 주도권을 쥐려는 움직임이 커질 것으로 봤다.
AI GPU 수요, 내년에도 고공행진
투자의 일환으로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한 수요도 견조할 전망이다. LLM 등 AI 관련 핵심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백억 규모에 달하는 GPU 확보가 선결 과제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AI GPU 이용이 가능한 클라우드 서비스의 수요 또한 증가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GPU 강자인 엔비디아의 입지도 예년보다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클라우드 영역에 침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고 본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엔비디아에 직접 GPU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아마존웹서비스(AWS), MS 애저,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을 활용하고 있다. 해당 빅테크 클라우드는 엔비디아에서 대량으로 칩을 구매한 곳들이다. 다만 아마존, MS, 구글이 GPU에 경쟁할 자체 AI 칩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은 엔비디아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엔비디아 또한 새 전략을 통해 클라우드 회사에 대한 의존을 줄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올해 공개한 DGX 클라우드 서비스를 내년에 더 강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국식 AI 법 잰걸음
개발 속도를 올리는 것도 좋지만, 실효성 있는 규제나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현 기준 세계 첫 AI 규제안을 만든 곳은 유럽연합(EU)이다. EU 집행위원회와 회원국 대표는 AI가 촉발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후에 벌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자는 취지로 지난 8일(현지시간) AI 법에 잠정 합의했다. 유럽의회에 따르면 EU는 ▲민주주의에 잠재 위협을 미칠 수 있는 AI 제한 ▲범용AI 개발 기업의 학습 과정 보고 의무화 등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법을 어길 시 3500만유로(약 499억원) 등의 벌금이 부과된다. 법안은 2025년 이후 효력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도 행정명령을 통해 신뢰할 수 있는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한 바 있다. AI를 매개로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겠다는 취지로 읽히는 조항 또한 포함했다. EU가 AI 부작용에 집중했다면, 미국은 국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한국도 거시적인 차원의 법안을 수립했다.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이하 인공지능 기본법)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한국의 경우 EU식, 미국식을 넘어 국내 AI 생태계에 맞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당 법안에는 '선 기술 개발, 후 규제' 기조와 함께 고위험 AI에 대한 통제를 암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진흥법적인 요소와 규제법적인 요소가 섞여 있는 셈이다. 상반된 성격의 두 요소가 시너지를 내기 위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는 이유다.
AI 협력? 따로 또 같이
이러한 분위기 속 협력 생태계에도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기존에는 각자의 노하우를 결합해 새 기능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어제의 동료가 적이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오픈AI와 MS도 각 사의 필요에 따라 '따로 또 같이'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MS는 지금까지 오픈AI에 100억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챗GPT 등 오픈AI의 주요 서비스를 자사 제품에 적용했다. 다만 오픈AI가 엔터프라이즈 사업을 확장하며 MS와 직접 경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MS 또한 오픈AI를 넘어 자사 기술을 다각화해야 하는 과제 앞에 놓인 상황이다.
AI 기술 사전이 달라진다
이 밖에도 AI 기술 용어의 정의가 달라지거나, 사용되는 용어 자체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LLM이 대표적인 예다. LLM은 현재 AI 모델을 통용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다만 멀티모달이 등장하면서 문자, 이미지를 넘어 영상, 음성, 음악까지 인식하는 모델이 실현되자 LLM의 정의를 구체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 LLM의 경우 단순 '언어 모델'이라는 의미만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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