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대기업의 그림자에 들어선 공공 SW 사업

이상일 기자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대책(이하 종합대책)’ 일환으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정책실장이 3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디지털행정서비스 국민신뢰 제고대책(이하 종합대책)’ 일환으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안을 발표하고 있다. [Ⓒ 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최근 정부의 공공 SW 사업에 대한 정책 변경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는 대기업의 공공 SW 사업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어, 공공 시장에서 활동하는 중소 SW 기업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31일 범정부 태스크포스(TF)는 서울정부청사에서 ‘디지털행정 서비스 국민신뢰 제고 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 소프트웨어 사업의 경쟁 활성화와 품질 제고를 위한 대기업 참여제한 제도개선 방안을 확정하고 11년 만에 제도의 개편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주요 내용으로는 ‘설계‧기획 사업’ 전면 개방, 700억원 이상 대형사업에 상출제 대기업 참여 허용 등으로 이를 통해, 대형사업에서 대‧중견기업간 경쟁 활성화를 통해 기업규모와 상관없이 최적사업자를 선정하도록 하고 품질제고 노력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공공 SW 사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안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대기업의 참여 확대라는 단편적인 해결책을 선택했다. 적정 사업 예산의 확보, 대가 없는 과업 변경의 금지, 변동형 계약제 등 다양한 방안들이 제시됐으나, 이러한 제안들은 연구용역 추진 등으로 후순위로 밀려났다. 이는 공공 SW 사업의 질적 향상보다는 행정 편의를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대기업들이 이미 국방, 치안, 전력 등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사업과 신기술 적용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참여 확대는 중소기업들의 기회를 더욱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특히 700억 원이라는 하한선 설정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부재함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가중시킨다.

무엇보다 공공 SW 사업에서 대기업의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지난 10여 년 간 SW진흥법이 추구해온 중소 SW 기업의 공공 시장 참여 확대와 이들 기업의 성장 및 고용 창출 효과를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사업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 시장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문제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책의 독소조항으로 구축사업자가 초기 운영까지 맡도록 하는 ‘일괄발주’와 유사한 서비스의 유지관리 사업에 대한 ‘통합발주’ 허용을 꼽고 있기도 하다.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사업까지 대기업에게 개방하는 것은 중소기업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는 것이다. 그간 유지보수 사업은 중소기업들에게 중요한 기회의 장이었으나, 이를 대기업에게 개방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은 공공 SW 시장에서 더욱 위축될 위험이 있다.

700억이라는 규모는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다. 단일 SW 개발사업에서 700억원 규모의 사업은 흔치도 않다. 하지만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듯 작은 사업들도 모으면 700억을 만들 수 있다.

또, 대기업이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고 시스템 구축 사업자가 초기 운영까지 담당하도록 구축·운영 사업을 일괄 발주할 수 있도록 하면 700억원 규모의 사업을 만드는것은 쉬울 수 밖에 없다.

아울러 운영·유지보수만 별도로 보더라도 기존의 단년 계약이 아니라 최소 2~3년 이상 장기계약이 가능하도록 추진한다고 발표됐는데 단일 개발 사업으로는 대기업 참여가 불가능한 규모지만, 유지보수까지 엮을 경우 대기업 참여가 가능한 수준으로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된다.

정부의 정책 변경은 단기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인 공공 SW 시장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공공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정부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치우치지 않고, 공공 SW 사업의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균형 잡힌 접근 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상일 기자
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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