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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40년] ⑤ 정치, 경제를 압도하다…제2이통사 '무산'

바르셀로나(스페인)=김문기 기자

전세계 내노라 하는 이동통신사들이 총출동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모바일월드콩글레스(MWC)에서 올해도 SK텔레콤은 메인홀 중심에서 우리나라 정보통신기술(ICT)을 글로벌에 전파하고 있습니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이한 SK텔레콤은 국내 1위 이통사를 넘어, AI 컴퍼니로 또 다른 패러다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과거 40년을 조망해보고 미래 ICT 개척자로서 SK텔레콤의 비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주>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중) [사진=SK그룹]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중) [사진=SK그룹]

[디지털데일리 김문기기자] 우여곡절 끝에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경그룹(대한텔레콤)이 선정되기는 했으나 이후 대외적인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사업자 선정 시기가 하필이면 제6공화국 말기에 이뤄졌다는 점과 당시 악화된 경제적인 시장 상황, 특혜시비 등이 불거지면서 선정 사실 자체가 흔들렸다. 더 큰 문제는 정치권의 움직임이었다.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정치권에서는 ‘특혜 시비’라는 논란 하나만으로도 요동치기에 충분했다. 국민여론과 경제실정을 감안해 사업자 선정을 즉각 취소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독점운영에서 경쟁체제 전환이라는 산업적 목표가 정치화됨에 따라, 정치가 경제를 압도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선정 심사 당사자인 체신부는 의연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은 선정 과정에서 한점의 의혹도 없다고 강조했다. 대학입시에서 총장 아들이 응시했는데, 실력이 부족하다면 합격시키는 일이 없어야 하지만, 반대로 실력이 뛰어난데도 불합격 시키는 일 또한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도 특혜 논란에 대해 ‘공정한 심사 결과’라고 강조했다. 여야 우려를 인정하지만 의혹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만약 특혜가 사실이라면 정부가 이렇게 당당할 수도 없거니와 만약 연기를 결정했다면 더 큰 비난이 행정부에 쏟아졌을 것이라 반문했다.

선경도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선정에 따른 부당성이 증명된다면 어떠한 결정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최종현 회장 역시도 최악의 경우 사업권을 반납할 수 있다고 결의했다. 국민에게 보다 나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이후 이익이 발생한다면 국민주 형식의 기업공개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개인재산을 털어서라도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사회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가장 당혹스러운 곳은 실제 선정작업에 나선 심사위원들이었다. 모두가 소신 심사를 주장했다. 외압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맡은 부분 외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평가한 점수 등 전체 심사과정 역시 알 수 없도록 조치돼 있었기 때문에 신중한 심사가 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정치권? 월권!

선정발표 3일후. 돌연 언론을 통해 선경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자진 반납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같은 소식에 당혹스러운 곳은 당사자인 선경이었다. 컨소시엄은 국내 사업자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해외 사업자까지 포함된 상태. 미국 GTE 10%, 영국 보다폰 6%, 홍콩 허치슨이 4%를 투자한 국제 컨소시엄이었다. 당연히 외국 기업의 경우 사업권 반납에 따른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었다. 더 큰 문제는 해외 기업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데 있었다. 더욱이 국제적 망신까지 감당해야 할수도 있었다.

체신부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한번 결정된 행정조치가 정치권의 압력과 여론에 의해 뒤집힌다면, 정부 공신력 실추는 물론이거니와 다시 치뤄야 하는 재선정에 따른 부담도 가중된다. 1980년대말부터 정보통신 구조조정에 나섰으니 적게는 3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시 표정관리가 어려웠다. 정치 논리가 경제를 지배하는 사례가 계속된다면, 이는 곧 기업이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못하는 불신에 빠질 우려가 컸다. 당장 경부고속전철과 LNG 3호선, 영종도 개발사업 등 굵직한 현안들이 민관 협력에 따라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사자의 바람과 달리 정치권은 두 가지 대안으로 상황을 몰아갔다. ‘자진반납’과 ‘백지화’. 후자의 경우 정부 공신력 실추, 국가적 망신, 특혜 시비 논란에 대한 인정 등을 감당해야 했다. 전자라면 모든 책임을 선경이 져야 했다. 이는 이후 벌어질 각종 소송전까지 모조리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에 빠진다.

당연히 대한텔레콤 컨소시엄에 참여한 해외 기업들은 반발했다. 법률상 하자가 없고 심사과정이나 평가기준 과정도 문제없이 최다점수를 얻었음에도 자진반납을 해야 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실제 피해보상계약위반 위약금 청구 소송과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다만, 정치권은 이러한 사정에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체신부가 나서 선경의 제2이동통신사 자격 반납 절차가 가장 자연스러운 대안이라고 훈수를 뒀다. 체신부는 끝까지 이를 반대했다.


제2이통사 반납

8월 26일 청와대 국무회의. 노태우 대통령이 침통한 얼굴로 각 부처 공직자들을 위로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27일 오후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이 서울 을지로 선경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업 포기를 선언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손 사장은 ‘합법적 절차와 공정한 평가를 거쳐 사업자로 선정됐으나 물의가 커 국민 총화합에 기여한다는 취지에서 사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다시 다음날인 28일 송언종 체신부 장관이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이동전화사업 신규허가대상자의 재선정문제는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모든 문제를 다음 정부의 결정에 맡기기로 방침을 확정했다 발표했다.

또한 송언종 체신부 장관을 비롯해 심사에 참여한 중요 인사들이 모두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했다. 이진설 청와대 경제수석 역시도 사의를 표했다. 최소한의 잘못도 오해도 없었다는 의미의 사직이었다. 공직자의 마지막 양심이기도 했다.

선경 역시 다음 정권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사업을 재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바르셀로나(스페인)=김문기 기자
moo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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