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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 IT] 애플 비전프로, '마법 같은 순간'과 '사악한 가격·조작법'의 괴리

옥송이 기자
애플 비전프로.
애플 비전프로.
애플 비전프로 정면. 왼쪽은 외장 배터리.
애플 비전프로 정면. 왼쪽은 외장 배터리.
애플 비전프로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헤드 밴드의 다이얼을 돌려 머리에 맞게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고, 디스플레이 상단의 동그란 크라운을 돌려 AR 또는 VR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 또한 눈 주변을 감싸는 라이트실이 얼굴과 기기를 밀착시킨다.
애플 비전프로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헤드 밴드의 다이얼을 돌려 머리에 맞게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고, 디스플레이 상단의 동그란 크라운을 돌려 AR 또는 VR 모드 전환이 가능하다. 또한 눈 주변을 감싸는 라이트실이 얼굴과 기기를 밀착시킨다.

[디지털데일리 옥송이 기자] "Tomorrow’s Technology Today(오늘 만나는 내일의 기술)." 지난 2월, 팀쿡 애플 CEO가 비전프로를 공개하며 한 말이다. 특허 기술이 집약됐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궁금증을 안고 애플의 첫 XR 기기를 꼼꼼히 살펴봤다.

체험은 지난 19일 서울 마포구에 자리한 서울XR실증센터에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서울시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해당 센터는 XR실증지원 및 XR 인사이트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곳에서 애플이 지난달 미국 시장에 선보인 비전프로를 다뤄봤다.

먼저, 약 50분간의 체험 후 느낀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눈동자 움직임만으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놀라운 XR 경험의 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그간 팀쿡 애플 CEO가 비전프로에 대해 내비친 자신감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만큼 혁신적인 기능을 감각했다.

반면 이러한 눈부신 혁신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비전프로는 개인 맞춤형 제품을 표방한다. 구매자의 머리 사이즈에 맞춰 제공될 뿐 아니라, 초기 사용자의 동공 위치 및 동공 움직임에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초기 사용자와 다른 나의 동공 움직임을 기기가 인식하도록 하는 데까지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시작화면에 진입하기까지만 30분이 소요됐을 정도다. 혁신을 본격적으로 만나기까지 지지부진한 과정을 겪었다.

◆ '얼마나 째려봐야 하는건데'…까다로운 설정과 사용 조건

비전프로의 외관은 한마디로 "고급스럽다"로 요약할 수 있다.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글라스가 마치 고가의 스키 고글을 연상케했다. 플라스틱 소재가 아닌만큼 떨어뜨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착용했다.

고글처럼 비전프로를 쓴 뒤 머리 뒷통수 부분을 지지하는 헤드 밴드의 다이얼을 돌려 내 머리에 맞게 사이즈를 조절했다. 눈 주변을 감싸는 라이트실이 얼굴과 기기를 밀시키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미광을 차단해 깜깜했다.

착용을 완료하자 초기 사용자가 설정한 비밀번호 입력 화면이 등장했다. 난관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비전프로에서는 사용자의 눈짓이 커서가 돼 원하는 위치를 클릭할 수 있는데, 기존 사용자와 나의 동공 위치와 움직임이 다른 탓에 아무리 눈을 깜빡거리고 눈동자를 굴려봐도 화면에 미동이 없었다.

비전프로를 착용한 모습.
비전프로를 착용한 모습.

사방을 째려보는 데 20여분을 썼다. 나중에야 전 사용자의 동공이 나보다 위에 있음을 인지했다. 턱을 끌어당겨 두겹 턱을 만든채로 위로 한껏 눈을 치켜뜨자 드디어 번호가 인식되기 시작했다. 컴퓨터로 따지면 커서가 움직인 셈이다. 클릭은 손가락 엄지와 검지를 교차시켜 꼬집는 동작이면 된다. 비밀번호 해제까지 30분이 걸렸으니 벌써 진이 빠졌다. 무거운 기기를 눈에 밀착시킨 채로 한참을 부릅뜬 탓에 시쳇말로 '눈이 빠질 것' 같았다.

◆ '시선과 손 동작' 익숙해지니 편리, AR·VR 자유자재 '매력적'

다행히 진입장벽을 넘으니 '아이 셋팅'을 새롭게 할 수 있었다. 화면에 육각형 도형이 등장했다. 안내에 따라 육각형 꼭지점을 몇차례 인식하고 나자 세팅이 끝났다는 안내가 나왔다. 비전프로 상단 크라운 버튼을 누르니 홈 화면이 나왔다. 그제야 비전프로의 진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깜깜한 화면이 사라지고 현실 세계 위로 홈 화면 아이콘이 둥둥 떠있었다.

현실과 기기 속 화면이 혼재된 AR모드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크라운만 돌리자 VR 모드로 전환되기도 했다. 약 7~8년전 VR카페에서 처음으로 VR기기를 써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경험이었으니, 기술의 변화가 크게 다가왔다.

자유자재로 AR·VR 모드를 변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업무를 할 때는 AR 모드로 설정해 주변 환경을 의식한 채로 이용하고, 동영상을 시청할 때는 VR모드로 몰입감을 더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AR 모드일 때 주위 환경을 인식할 수는 있으나 다소 뿌옇게 보인다. 실제 눈처럼 뚜렷하게 보이진 않기에, 비전프로를 착용한 상태에서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보내거나 조작까진 힘들었다.

애플 비전프로를 착용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모습. 동공 움직임이 컴퓨터의 커서 역할을 대체하고, 꼬집는 듯한 손 모양을 취하면 클릭된다. 손을 꼬집을 채 위아래로 움직이면 화면 '스크롤'도 가능하다.
애플 비전프로를 착용하고 기기를 조작하는 모습. 동공 움직임이 컴퓨터의 커서 역할을 대체하고, 꼬집는 듯한 손 모양을 취하면 클릭된다. 손을 꼬집을 채 위아래로 움직이면 화면 '스크롤'도 가능하다.

이제 내 눈을 기기가 인식하는 만큼 사용도 편리해졌다. 그제야 마법같은 경험임을 체감했다. 이제 앱을 접속해보기로 했다. 아직 서울XR실증센터 측의 미국 계정이 마련되지 않아 홈 화면에 탑재된 기본앱을 사용했다. 해당 기기는 아직 국내에 정식 출시되지 않은 탓인지, 미국 계정을 별도로 만들어야 원활하게 다양한 앱을 이용할 수 있다.

애플TV, 애플뮤직, 노트, 사파리 등의 기본 앱 가운데 현재 지원되는 사파리부터 클릭했다. 주소 입력 창을 쳐다보며 손가락을 꼬집자 키보드가 허공 위에 등장했다. 글자를 하나씩 입력해 동영상 채널 유튜브에 접속했다. 손가락으로 화면 크기를 키우거나, 화면을 집은 상태에서 위아래로 집게손을 움직이면 스크롤도 된다.

원하는 뮤직비디오 영상을 재생시키자 마이크로 OLED에 3D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적용했다는 점이 실감났다. 음질도 빼놓을 수 없다. 따로 이어폰이 없음에도 귀 가까이에 위치한 스피커가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가운데 풍부한 음질을 제공해 놀라웠다. 유튜브 화면을 100%로 채운 뒤 VR모드로 설정하니 나를 둘러싼 360도 풍경이 하늘과 바다만 가득한 가운데, 동영상 화면만 있어 몰입감이 뛰어났다. 특히 VR모드로 설정하니 아까까진 잘 들리던 주변 환경 소리 대신 물이나 바람 따위의 자연 음향이 은은히 깔려 몰입감을 더했다.

유튜브에서 벗어나 포털사이트에 접속했다. 업무를 한다는 가정 하에 포털을 보는 상태에서 노트를 화면에 띄웠다. 키보드를 연결해 사용하면 업무를 하기에도 무리가 없을 듯했다. 다만 본체 무게를 줄이기 위해 따로 분리한 것으로 추측되는 외장 배터리는 비전프로를 체험하는 내내 걸리적거렸다. 배터리를 연결한 상태에서만 기기가 작동하는 탓에 책상 위에 올려둔 배터리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 실구매자들은 배터리를 주머니에 넣거나 손에 들고 다녀야 할 듯하다.

AR 모드에서 사파리 앱을 통해 유튜브에 접속했다.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모습이다.
AR 모드에서 사파리 앱을 통해 유튜브에 접속했다. 뮤직비디오를 시청하는 모습이다.
AR 모드에서 사파리 앱을 통해 인터넷 서핑하는 모습.
AR 모드에서 사파리 앱을 통해 인터넷 서핑하는 모습.
VR모드에서 작업한다는 가정 하에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노트를 그 위에 띄워 입력해봤다. VR모드 설정 시 자연 배경화면과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깔려 집중도가 올라갔다.
VR모드에서 작업한다는 가정 하에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노트를 그 위에 띄워 입력해봤다. VR모드 설정 시 자연 배경화면과 그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이 깔려 집중도가 올라갔다.

◆ 광대뼈에 쏠린 무게…비싼 가격·콘텐츠 부족은 명확한 한계

사용 평을 정리해보자면 이러하다. 장단은 있으나 눈동자 움직임이 컴퓨터의 커서를 대체한다는 점과 간단히 손가락을 꼬집는 동작만으로 클릭이 가능한 점이 혁신적이었다. 이것만으로도 타사의 기기를 압도하는 기술력이란 생각이 든다.

반면, 별도의 외장 배터리가 사용성을 떨어뜨리고, 배터리를 제외하고도 600~650g에 이르는 무게도 걸림돌이다. 삼겹살 한근을 얼굴에 지고 있는 셈이다. 비전프로와 얼굴의 밀착을 돕던 라이트실이 무게를 고스란히 얼굴에 가하는데, 체험을 끝내고 나니 광대뼈가 얼얼했다. 체험이 끝난 후에 화장실에서 팔자주름이 진해졌을까 거울에 비춰봤을 정도다.

눈 피로도도 엄청났다. 물리적으로 무거운 기기를 눈에 착용하고 있기에 사방에서 눈을 잡아당기는 느낌이 든다. 또한 2300만 픽셀의 화면이 눈앞에 있어 실시간으로 눈이 나빠지는 기분이다. 눈이 커서 역할을 하는만큼 역할이 큰데다가, 안경을 끼고는 비전프로를 사용할 수 없어 렌즈를 낀 탓에 더욱 눈이 건조했다.

높게 책정된 가격도 단점이다. 비전프로는 256GB·512GB·1TB로 구성된다. 같은 용량(512GB)의 메타 퀘스트3와 비교하면 약408만원가량 가격 차이가 난다. 128GB의 메타 퀘스트3가 69만원, 512GB는 89만원이다. 256GB의 비전프로는 3499달러(약470만원), 512GB가 3699(약497만원)이다.

메타 퀘스트3와의 비교를 더하자면 외관에서는 비전프로가 압승이다. 퀘스트3가 플라스틱 외관에 카메라가 탑재된 데 비해, 비전프로는 디스플레이가 겉면을 감싸고 메탈 소재를 더해 고급스러움을 더해서다. 해상도에 있어서도 퀘스트3가 900만 픽셀이지만, 비전프로는 2배 이상 높은 2300만 픽셀이다.

콘텐츠 측면에서는 여전히 메타 퀘스트3가 낫다. 사용 가능한 앱과 콘텐츠 수 자체가 메타가 더 다양하고 많아서다. 다만, 애플의 비전프로는 이제 1세대, 메타는 3세대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AR에 기반해 VR까지 즐기고 싶은 사용자 및 애플 특유의 간편한 조작감을 원한다면 비전프로가 적합하겠다. 얼리어답터라면 당장 구매해도 무리는 없겠으나 다음 세대를 기다려봐도 좋을 듯하다. 혁신은 계속 될테니.

옥송이 기자
ocks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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