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밸류業 금융①] 농협금융만의 논란일까… '제왕적' 지배구조 여전한 금융권
주요 금융지주사를 중심으로 올해 금융권은 '밸류업(Value Up)' 프로그램을 크게 강화하고있다. '주주 환원율'을 높이고 저평가된 시장 가치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숫자(주가)를 높이는 것만으로 밸류업이 완성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후진적 지배구조 뿐만 아니라 '홍콩 ELS사태' 수습과정에서 보여지고 있는 난맥상, 계속되는 배임·횡령 등 내부통제 문제 등 적지않은 과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밸류업이 가능하다.
<디지털데일리>는 '2024년 밸류業 금융' 기획 시리즈를 통해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각종 문제들을 짚어보고 전문가들의 다양한 해법을 제시한다. <편집자>
[디지털데일리 권유승 기자]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쭉 그럴거에요."
심지어 혹자는 이를 '조폭 거버넌스'라고 거칠게 표현했다.
NH농협금융의 지배구조에 대한 금융권 관계자들의 평가는 이처럼 차갑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농협중앙회를 정점으로 농협금융지주, 농협은행 등으로 내려오는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향한 냉소다.
농협중앙회의 막강한 권력과 그에 따른 지나친 금융계열사 경영진 인사 개입 논란, 그리고 그러한 관행이 농협금융과 계열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지적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농협은 지난 2012년 신용·경제사업 부문을 분리하면서 구조적으론 중앙회의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한 구조 개혁을 단행했다. 하지만 정작 십여년이 지난 현실에선 여전히 농협 특유의 '앙시엥 레짐(구체제)'이 곳곳에서 발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3월, NH투자증권 새 대표 선임 과정에서 발생한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간의 '집안싸움'은 이러한 농협의 '구체제' 관행 구조 속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석준 농협금융 회장이 새롭게 농협중앙회장으로 선출된 강호동 회장에게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특히 관심이 쏠렸다.
당시 농협 안팎에선 '고도의 정교한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 계열사 대표 자리에 해당 분야에 전문성이 없는 중앙회 인사를 낙하산 식으로 꽂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이석준 회장이 추천한 인물이 NH투자증권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사태는 마무리됐지만 그렇다고 농협중앙회가 더 이상 금융계열사 임원급 인사에 개입하는 관행이 깨졌다고 보기는 무리라는 시각은 여전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은 구조상 농협중앙회의 입김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다른 금융지주와는 달리 금융지주 위에 또 다른 상위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여러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이러한 농협의 후진적 지배구조는, '농협중앙회장의 셀프 연임' 조항 논란으로 지난 21대 국회에서 최종 폐기된 '농협법' 개정안이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더욱 보강돼 재추진 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금융 당국 역시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를 향해 칼을 빼들었다.
배임사고 등 각종 농협금융 계열사의 금융사고가 이 같은 기이한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판단하고 지난달 20일부터 6주간의 일정으로 농협금융에 대한 정기 검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금융 당국의 엄포 또한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이같은 농협의 지배구조 문제와는 별개로, 정부 출신 관료가 퇴직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관행 또한 이미 엄청난 악습이기 때문이다.
'낙하산 인사'에 있어선 자신들도 수혜자(?)일 수 있는 금융 당국이 순수한 열정으로 금융지주사의 지배구조를 개혁할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한 금융권 관계자는 "바꿀 수 있었으면 진작 바꾸지 않았겠냐"며 "비단 농협뿐만이 아닌 전반적인 금융그룹들도 마찬가지다. 우스갯소리로 이런 금융사들은 결국 금융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이 돌고 돌아 향후 보전해야 할 자리가 될 수도 있는 곳이다. 즉 금융당국도 적극적인 거버넌스 해결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농협의 거버넌스 문제가 이번에 도드라져 보일뿐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지배구조도 문제점을 지적 받고 있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 현실이다.
◆'홍콩 ELS 사태'도 결국 지배구조의 문제에서 출발… "사외이사들 거수기 역할에 불과"
실제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거버넌스에 혁신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되지만 크게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특히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사외이사는 전문성에 기반해 CEO 및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인 것이다.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금융지주의 ‘2023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 37명이 이사회에서 논의한 결의 안건만 162건에 달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반대표는 전무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잠재 위험 요소로 떠올랐던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손실 사태도 사실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충분히 예방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큰 아쉬움이 남는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홍콩 ELS사태' 뿐만 아니라 '해외 상업용 부동산 리스크가 현실화되는 것도 금융지주사들이 모른 체 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게 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성과주의에 매물된 분위기에서 어느 누구도 함부로 리스크를 강조하거나 제지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금융지주사들의 '제왕적 경영'이 여전히 위력을 떨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른 현상이 천편일률적인 이사회 구성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는 학계출신 등 교수그룹 인물이 대부분이며 최근 강조되고 있는 IT, 기후 등 관련 전문가 그룹은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 3월 주요 금융지주들의 사외이사 신규선임·재선임 현황을 살펴보면 KB금융은 사외이사 4명 중 2명이 학계 출신이었다. 신한금융은 9명 중 7명이, 하나금융은 신규이사(2명) 모두가 교수그룹이었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한국은 특정 기업의 사외이사가 또 다른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외국에 비해 사외이사의 풀이 한정적인 측면이 있다"면서 "학계출신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이러한 영향을 일부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사외이사 구성원이 다양하지 못한 것은 학연, 지연, 혈연 등 특히나 인맥을 중요시하는 국내 정서가 반영된 영향도 어느정도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당국도 금융지주 및 은행권에 지배구조 개선을 주문하고는 있다. 지난해 '지배구조 모범 관행' 최종안을 마련하고 은행별 이행계획 등을 제출받아 미비점을 점검 했다.
모범관행은 ▲사외이사 지원조직 및 체계 ▲이사회 및 사외이사 평가체계 ▲이사회 구성의 집합적 정합성·독립성 확보 ▲CEO 선임 및 경영승계절차 등 크게 4개 분야로 구분됐다.
이와 관련 금감원은 "이행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거나 이행 여부, 시기가 불명확한 항목이 있다"며 "일부 은행들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신한금융에 CEO 선정 절차 개선 요구… 갈길 먼 금융권 지배구조 혁신
최근 금감원은 신한금융지주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 신한금융의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이 자의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선출과정에서의 투명성을 높일 것을 주문해 금융권의 주목을 받았다.
금감원은 이와 관련 신한금융지주사와 자회사의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선정할 때 내부 후보군은 연령, 경력 요건 등 선정기준이 있는 반면 외부 후보군은 별도 선정기준이 없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금감원은 이를 포함해 사외이사평가제도의 개선 등 경영유의사항 5건, 개선사항 9건을 신한금융측에 통보했다.
'금융지주사의 CEO선임 및 승계절차' 등 금융당국이 제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이 어느정도 개선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결코 쉽지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비단 신한금융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경영인에 의한 경영효율을 높이고 국내외 경쟁력을 키우기위한 지배구조의 개선, 여전히 국내 금융권에 주어진 큰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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