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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1위' 남발 광고 그만…대표성·공신력 높은 근거 필요

옥송이 기자
서울의 한 가전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은 내용 무관. [ⓒ연합뉴스]
서울의 한 가전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제품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은 내용 무관.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옥송이 기자] 매일 새로운 1위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판매 1위, 고객 만족도 1위, 신뢰도 1위 등. 수많은 1등이 소비자들에게 자신의 제품력을 강조하며, 소구 포인트로 삼는다. 허나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 1등임을 주장하는 제품 하나하나에 딴지 걸어가며 근거를 찾아 헤매기란 쉽지 않다. 덕분에 기업은 '1위'를 하나의 마케팅 요소로 활용하고, 소비자는 '그래도 1위라는데 괜찮겠지'라는 판단하에 해당 마케팅을 일부 용인한다. 숫자가 풍기는 객관적인 이미지 탓일 터다.

이 같은 숫자 혹은 데이터의 함정이 일상에 만연하다는 사실을 최근 깨달았다. 발단은 모 업체의 TV CF다. 단 15초짜리의 해당 영상에는 멋진 광고 모델과 신제품이 어우러진다. 눈이 즐거운 가운데, 내레이션과 문구로 "얼음정수기 국내 판매 1위"라는 문장이 스쳐 지나간다. 번뜩 어떤 기준에 1위라는 걸까 의문이 들어, 유튜브로 광고를 다시 찾아봤다. 해당 카피가 나오는 순간 정지 버튼을 눌러, 글자를 찬찬히 읽어보니 카피 대비 작은 서체로 데이터 집계 업체와 기간이 명시돼 있다. 한 가격 비교 중계 업체가 2021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집계한 얼음정수기 판매 데이터가 근거다.

문제? 없다. 데이터의 출처와 집계 기간을 명확히 밝히고 있으니까. 다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짧은 TV CF 특성상 눈에 띄는 정보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한다. 그러나 데이터에 대한 설명이 작은 서체로만 명시돼 있어, 소비자들이 단 몇 초 사이에 모든 정보를 파악하기 어렵다. 게다가 해당 데이터조사 업체는 기본적으로 오픈마켓·대형몰의 데이터를 자사 사이트로 가져와 소비자들의 가격 비교를 돕고 매칭해 주는 곳이다. 오프라인 판매나 온라인에서도 가격 비교를 하지 않는 고객의 데이터는 포함되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볼 점이 데이터의 대표성이다. 렌탈 업계의 판매 채널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코디 내지는 매니저 등으로 불리는 방문 인력에 의한 방판(방문판매), 가전양판점과 이커머스를 통한 시판, 마지막으로 자사몰이나 플랫폼을 활용한 자사 영업망 판매다. 온라인에서도 가격 비교를 사이트를 통해 구매하는 고객은 렌탈 업계의 판매 채널 가운데 일부인 것이다. 즉, 업계 전체를 포괄하는 판매 가운데 해당 데이터의 비중이 대표성을 띤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또 하나. 통계의 시점은 약 2년 전으로, 최신의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떤 데이터가 비교적 소비자에게 적확한 정보일까? 영화 산업을 예로 들자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전국 영화관의 입장권 발권 정보를 실시간으로 처리 및 집계하는 '영화상영관입장권통합전산망'을 갖추고 있다. 해당 위원회는 이 전산망에 기반해 스크린 점유율, 좌석 점유율, 실시간 예매율, 박스오피스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각 항목은 매일 통계가 업데이트되며, 1위부터 10위까지 순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누구나 전산망에 접근해 정보를 볼 수 있으며, 지난 데이터도 확인 가능하다.

기업들의 데이터 공신력을 강구 할 방법에 대해 이장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 교수는 세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먼저 전체 판매 비중 가운데 본 지표가 포함하는 비중, 즉 대표성이다. 이를테면 전체 100개 중 10개보다는 99개의 데이터를 가진 통계가 더욱 신뢰성이 높다는 의미다. 또한 정보의 최근성과 접근성도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그 지표를 얼마나 쉽게 접근해 살필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면서 반복적으로 비교할 수 있고, 1위뿐 아니라 하위 순위도 모두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어디선가 매긴 순위를 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것은 기업의 자유다. 여론조사 결과 하나에 판세가 기우는 정치권과는 책임감의 무게가 다르기에 무람없이 써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최소한 설득하려는 노력은 보여야 하지 않을까? 대표성이 부족하거나 최신성을 띠지 못하는 데이터를 내세우는 건 소비자를 호도하는 태도다. 공정위 등 기관에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집계한다면 해당 문제를 종식시킬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모든 기업의 데이터를 통일해 집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상 순위 및 데이터에 대한 옥석 판단의 몫은 소비자에게 전가된 상황이다. 결국 소비자 스스로 판단 기준을 높여야겠지만, 궁극적으로 기업들의 자성도 뒤따르길 바란다. 숫자는 죄가 없지만 파급력이 크기에 조심히 다뤄야 한다. 대표성과 최신성, 접근성이 보완된 데이터가 1위 마케팅의 기반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옥송이 기자
ocks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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