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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韓 미디어 시장…"글로벌 OTT 시장 잠식, 공정경쟁 불가"

채성오 기자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 관계자들이 '국내 방송 미디어 산업 위기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 관계자들이 '국내 방송 미디어 산업 위기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

[디지털데일리 채성오기자] 국내 방송 미디어 시장 위기의 구조적 원인이 글로벌 미디어 경쟁체계로의 편입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앞서 국내 미디어 관련 학회를 대표하는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는 지난 26~27일 이틀 간 '국내 방송 미디어 산업 위기의 원인과 극복방안'을 주제로 한국방송회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연속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전문가들은 국내 방송 미디어 산업이 위기를 맞게 된 원인은 국내 미디어 산업이 글로벌 OTT에 의해 무한경쟁체제에 편입됐음에도 정부와 시장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단순한 성장 저하가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존폐문제가 달려 있다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국내 미디어 시장은 글로벌 OTT의 콘텐츠 공급원이면서 소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유튜브·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는 압도적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한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반면 국내 방송 미디어 사업자는 규모의 경제·자본력에서도 체급 차이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이상복 JTBC 전문위원은 "국내 방송 사업자는 지상파만 존재했던 1960년대의 껍데기 같은 규제가 지속되고 있다"며 "글로벌 OTT에 대항하는 국내 사업자는 발목에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과 같은 형국"이라고 설명했다.

이헌율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교수는 "글로벌 OTT는 전 세계 그 어디보다 우수한 네트워크 인프라에 무임승차 하면서도 국내 콘텐츠 제작시장을 하청기지화 하고 있다"며 "글로벌 OTT가 올려놓은 엄청난 제작비로 인해 방송사는 콘텐츠 제작을 안 하는 것이 살 길이 돼 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낡은 규제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정부의 콘텐츠 제작 지원사업의 경우, 60분물에 대해서만 중간 광고를 허용하면서 제대로 된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 비록 60분물 허용을 통해 숨통이 일부 트이긴 했지만, 글로벌 OTT는 다양한 시간 포맷(30분, 40분 등)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어 이와 경쟁해야 하는 영상 제작자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동래 래몽래인 대표는 "좋은 콘텐츠를 만들고 싶은데, 정부의 광고 규제로 제대로 된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다"며 "국내 방송 생태계의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비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동래 대표와 이헌율 교수는 "국내 미디어 산업의 글로벌 밸류 체인 편입으로 인해 오징어게임과 같은 K-콘텐츠가 세계에 확산되었지만, 넷플릭스와 이정재(넷플릭스에 의해 선택된 소수의 배우)만 돈이 되고, 나머지는 힘겨운 생존 싸움에 놓인 것"이라며 "겉으로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위기의식에 휩싸여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방송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여 방송법 전면 개정 등의 목소리도 많지만, 국내 방송법은 헌법보다 개정이 어렵고 정쟁만 난무하거나 방치된 실정이다. 특히 헌법이 9번 개정되는 사이 방송법은 단 두 차례만 개정되는 등 방송법은 헌법보다 개정하기 힘든 법이 돼 간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또한 방송 미디어 사업자들이 진짜로 필요로 하는 방송광고 규제, 이용약관 규제, 홈쇼핑 편성 규제와 같이 실질적인 규제는 건들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규제를 풀면 새로운 자본이 투입되고 활력이 유도되지만 융발위 대책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이유다.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정부는 지난 10년간 6차례나 발표했지만, 실제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희망고문만 더하고 있다"며 "최근 발표된 방송콘텐츠융합발전위원회의 대책도 이미 사문화된 규정을 폐지하거나(유료방송 최소 채널 수 규제 폐지 등), 시장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는 내용(재허가 제도 폐지 등)에 불과해 정부의 현실 인식은 여전히 안이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한국 미디어를 대표하는 학회들이 새로운 방송 정책 및 법률 마련을 위한 플랫폼이 되어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을 만들고 국회, 정부, 이해관계자 설득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이번 세미나를 통해 나왔다.

홍종윤 서울대학교 교수는 "방송 학자들이 정부의 방송법 개정 연구반 등에 참여하여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왔지만, 이를 통해 마련된 여러 법안들은 여전히 공무원들의 캐비넷에만 보관되고 실제 개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며 "이에 미디어 3개 학회가 공동으로 통합방송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플랫폼이 돼 과기정통부, 방통위, 문체부, 국회, 그리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 3학회는 국내 방송 미디어 시장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규제 완화와 함께 글로벌 OTT 사업자와의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글 한 개 기업의 광고 매출이 우리나라 전체의 신문·방송 매출보다 많을 정도로 글로벌 OTT 사업자는 엄청난 자본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데다, 해당 기업들은 이윤극대화만을 추구하면서 우리나라의 광고 재원을 모두 잠식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종관 수석전문위원은 "방송과 같은 기존 레거시 영역은 혁파 수준의 규제완화가 필요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OTT와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환경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며 "글로벌 OTT에 대한 규제를 방송 규제 수준으로 높이는 것이 아닌 국내 방송사업자의 규제 수준을 OTT 사업자 수준으로 완화하는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OTT에 대해서는 그들이 미치는 사회적 영향력에 비례한 책임도 함께 가져가는 새로운 룰 셋팅이 필요하다"며 "즉, 한국형 DSA, DMA가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채성오 기자
cs86@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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