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밸류업' 몰입하는 은행권… 정작 '천수답 금융' 해법은 못찾나
[디지털데일리 강기훈 기자] '천수답'(天水畓), 별도의 양수 시설 등이 없이 오직 빗물에 의해서만 벼를 심을 수 있는 논을 뜻한다.
지금 국내 은행들이 실적에 있어 보이는 행태가 딱 이와 같은 모습이다. 이자이익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금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3분기까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12조6886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이는 전년 대비 4.7%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역대급 실적은 불어난 이자이익에 기인한다.
5대 은행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31조4383억원의 이자이익을 시현했다. 같은 기간 '비이자이익'은 3조7767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5대 은행의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 의존도가 약 89.3%에 달하는 셈인데, 이는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의 비이자이익 비중이 30%에 달하는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러니 국민을 상대로 '이자장사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년전인 지난해 10월, 당시 국무회의 석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은행권을 직격한 바 있다.
이자이익이 늘어나는 데에는 최근 은행들의 예대금리차가 더욱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이달 5일 임원회의에서 "지난 몇 달 동안 예대금리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행들의 예대금리차에 의한 이자장사 논란은 금융 당국의 책임도 크다.
부동산 문제때문에 가계대출 규제의 고삐를 당기다보니 기준금리가 인하됐어도 정작 대출 창구에선 금리가 오르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이미 올해 두 차례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바 있고, 한국은행도 금리를 내리며 보조를 맞췄다.
그러나 여전히 대출금리는 오르고 예금금리는 하락하는 기이한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대출금리의 경우, 지난 13일 기준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고정형(혼합형·주기형) 금리는 연 3.72~6.12%로 집계됐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인하한 지난달 11일 연 3.71~6.11%보다 도리어 금리 상단과 하단이 0.01%포인트(p) 상승했다.
반면 수신금리는 더 낮아졌다. 쥐꼬리만한 예·적금 이자가 더 줄어든 것이다. 지난달 23일 농협은행과 우리은행이 수신금리를 인하했다. 이어 하나은행과 신한은행도 내렸다. 국민은행은 거치식 예금 9종과 적립식 예금 13종 상품에 대해 최대 0.25%p 가량 금리를 내렸다.
결국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제만 더욱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은행권은 "이게 왜 내탓이냐"면서 금융 당국에 화살을 돌린다. 금융 당국 핑계를 대며 여전히 '천수답 금융'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권이 '천수답금융'의 오명을 벗기위해선 예대금리차를 줄이는 노력을 하든가, 또는 요즘처럼 시절 좋을때(?) '비이자이익' 포트폴리오를 늘리기위한 과감한 M&A(인수합병)이나 신사업 투자를 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
하지만 현재로선 '천수답금융'을 끊어낼 수 있는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혁신의 메기'로 기대를 모았던 인터넷전문은행들은 오히려 '주담대' 시장에 뛰어들며 기존 레거시 은행들 따라하기 바쁘다.
최근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 회장들은 자사 주가 관리를 위한 '밸류업' 전략에 몰입하고 있다.
새삼스럽지만, 주가부양을 위한 '밸류업'에 쏟는 정성의 절반만큼만이라도 진정한 은행의 역할, 나아가 공동체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고민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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