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권 분쟁→국가 경제·안보 사안’… 고려아연 쟁탈전, 새 국면맞나
- 산업기술보호법,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시 ‘산자부 장관 승인’ 필수
- 최근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들 해외서 인수의향 나타냈으나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
- 국내 중국산 전구체 의존도 97.5%로 고려아연의 ‘하이니켈 전구체 기술’ 보호 필요
[디지털데일리 최천욱 기자] 고려아연이 MBK파트너스-영풍과 벌이고 있는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단순히 경영권 쟁탈을 위한 지분 경쟁에서 벗어나 국가 안보 문제로 확대될 경우, 사안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는 견해에 힘이 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고려아연과 자회사인 켐코(KEMCO)가 함께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가 지난 13일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하면서 이러한 논리가 주목받고 있다.
즉,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현재의 경영권 분쟁이 단순한 분쟁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18일 ‘산업기술의 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보호법)’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국가핵심기술을 외국 기업 등에 매각 또는 이전 등의 방법으로 수출할 때, 또한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이 해외 인수합병과 합작투자 등 외국인 투자를 진행할 때는 미리 산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자부 장관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한 뒤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승인 여부를 최종 판단한다.
이에 따라 고려아연은 정부 승인 없이는 해외에 매각할 수 없게 됐다. 최근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된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산업계에 따르면, 국내 대형 전선 회사인 A사는 2019년 보유하고 있는 ‘500kV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선정되면서 당시 추진하던 해외 매각이 막혀 2년 뒤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또한 국내 대형 공작기계 회사인 B사도 보유하고 있는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제조 기술’ 때문에 중국과 일본 기업 등에 적극적으로 인수를 타진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결국 국내 기업에 인수됐다.
이와관련 고려아연측은 "고려아연이 보유한 국가핵심기술인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의 제조·공정 기술’은 우리나라가 이차전지 소재 산업뿐만 아니라 전방 산업인 전기차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적으로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은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시장 조사 기업인 크레딧솔루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구체 시장에서 중국 점유율은 85% 이상이다. 국내에서 중국산 전구체 의존도는 무려 97.5%(한국무역협회 기준)에 달한다.
이번 고려아연 기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으로 향후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엑시트)는 난항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 않아도 20조 원이 넘는 고려아연의 시가총액과 대규모 인수 자금 때문에 MBK와 영풍의 투자금 회수 작업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많았던 상황이다.
투자금 회수 작업이 지지부진해지면 그 사이 고려아연의 기업 가치는 크게 하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K와 영풍이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MBK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해외 우량 자산을 먼저 구조조정해 수익화를 도모하고 분할 매각 등을 활용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또한 고려아연을 세계 1위 비철금속 기업으로 만든 다른 중요 기술의 해외 공유와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여지도 있다.
더불어 고려아연의 뛰어난 현금 창출력에 기대 대규모 배당 정책으로 막대한 현금을 챙겨 고려아연이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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