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aaS 도약]④ 제품 현지화부터 시장 진입까지...달라져야 할 지원전략
[디지털데일리 이안나기자] 소프트웨어 산업이 한국 경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소프트웨어 수요가 급증했고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시장 성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면서부터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소프트웨어 시장은 44조원 규모로 성장했지만 해외진출 기업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업계에선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 수출 구조를 넘어 소프트웨어 수출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제조업 성장세가 둔화되고 글로벌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하지만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높은 초기 비용과 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기업들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으로 성과를 내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이 요구된다.
◆ PMF과 GTM 과제...현지 시장 인사이트가 관건=업계에 따르면 SaaS 기업 해외 진출 성공 여부는 두 가지 핵심 과제 해결에 달려있다. 현지 시장에 맞는 제품 최적화, 즉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 Market Fit, PMF)과 구체적인 시장 진출 전략(Go To Market, GTM)이다.
제품을 현지 시장에 맞게 최적화(PMF)하는 건 시장 진입 첫 단계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카카오톡 기반 서비스가 보편화됐지만 미국에선 전혀 다른 접근이 필하다. GTM은 그 다음 단계로 어떻게 시장에 진입하고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의미한다.
국내 한 SaaS기업 관계자는 PMF와 GTM를 분리해서 살펴봐야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사실 현지 고객을 만나 인사이트를 얻는 것부터가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SaaS 기업이라도 현지에서 활동이 불가피한데, 작은 규모 회사들엔 현지 사무실 임대와 인력 채용에 드는 비용이 큰 부담이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사무실을 임대해 운영하는 데만 월 100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사이버 위협 인텔리전스 플랫폼 ‘크리미널IP’를 운영하는 에이아이스페라(AI스페라)는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해 성과를 거뒀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모든 콘텐츠를 현지인 언어와 문화에 맞춰 제작하고, PCI DSS와 같은 국제 인증을 획득해 신뢰성을 높였다. 그 결과 현재 해외 고객 비중이 90%에 달하며, 시스코, 바이러스토탈 등 글로벌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AWS, MS 애저, 스노우플레이크 등 주요 클라우드 마켓플레이스 입점으로 유통 채널도 다각화했다.
◆ 정부 지원, ‘발굴’과 ‘육성’ 분리한 투트랙 전략 시급=강병탁 AI스패라 대표는 “현재의 정부 지원사업은 다수 기업에 소액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해외 진출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며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을 키워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업계는 초기 기업 발굴과 성장 기업 육성을 분리해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예비 창업 패키지, 초기 창업 패키지, 팁스(TIPS) 등 초기 기업 육성을 위한 지원 체계는 이미 잘 갖춰져 있다. 여기에 기술보증기금이나 서울보증기금 저리 대출 등 정책금융까지 더해져 창업 생태계는 어느 정도 안정화됐다는 평가다.
반면 시리즈 A·B 단계를 지난 성장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진출할 때는 오히려 공백이 생긴다. 검증된 기업들이 더 큰 도약을 위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닌, 실질적인 현지화와 시장 진입을 돕는 인프라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SaaS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해외 주요 거점에 공유 오피스 공간을 마련하고, 현지 파운더나 액셀러레이터와의 네트워킹을 지원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 현지화 전략부터 신뢰도 확보까지 ‘다각도 접근’ 필요=각 시장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도 중요하다. 일본 시장의 경우 디지털 전환(DX)이 한국보다 늦게 시작돼 레거시 시스템이 적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오히려 클라우드 기반 시스템에 대한 저항감을 낮추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많은 일본 기업들이 종이 문서에서 곧바로 클라우드로 전환하면서, SaaS 도입에 대한 거부감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이다.
또한 지리적 근접성은 한일 양국 모두에게 이점이 된다. 시차가 적어 실시간 기술 지원이 용이하고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상호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일본은 결코 쉬운 시장이 아니며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재의 해외 진출 매칭 사업은 주로 1~2인 규모의 소규모 기업이나 해외 경험이 부족한 기업과 매칭되는 경우가 많아 성공률이 제한적이다. 이에 해외 바이어들 신뢰도 확보가 필요하다. AI스페라 측은 “해외 기업들이 국내 제품 구매를 꺼리는 주요한 이유는 한국 기업이 갑작스럽게 자국에서 서비스를 중단할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라며 “정부가 신뢰할 수 있는 해외 현지 파트너를 발굴하고, 안정적인 유통을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제 인증 획득을 위한 지원도 필요하다. AI스페라는 “글로벌 보안 인증은 데이터 규제 준수와 기업 신뢰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이지만, 인증 유지 비용이 높아 기업들에게는 큰 부담”이라며 현실적인 수준의 인증 지원 확대를 촉구했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이제 시작이다. 성공적인 현지화를 위해서는 기업의 노력과 함께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원이 해외진출의 시작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기업들은 이미 자체적으로 해외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정부 지원 핵심은 이때 직면하는 리스크를 줄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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