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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수술대 오른 AI 기본법, CCTV는 어디에

이나연 기자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AI기본법)이 통과되고 있다. 2024.12.26 [ⓒ 연합뉴스]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안(AI기본법)이 통과되고 있다. 2024.12.26 [ⓒ 연합뉴스]

[디지털데일리 이나연기자] 첨예한 논쟁 끝에 의무화된 수술실 폐쇄회로TV(CCTV) 설치는 대리 수술 등으로 인한 직간접적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시작됐다. 혹자는 낮은 처벌 수위 탓에 CCTV 의무 도입이 대리 수술 문제를 뿌리 뽑는데 기여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의료인에 대한 인권 침해도 부작용으로 꼽힌다.

하지만 국민 80%가 수술실 CCTV 설치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CCTV를 통해 환자와 보호자가 느끼는 정서적 안정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국내외 정보기술(IT)업계가 예의주시하는 우리나라의 '인공지능(AI) 기본법' 입법 과정과 논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CCTV 역할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12월 통과돼 내년 초 시행될 AI 기본법은 유럽연합에 이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법안이다. 규제 내용을 포함한 전면 도입 기준으로는 세계 최초 AI 법안이 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1월 하위법령 정비단을 구성해 해당 내용과 가이드라인을 구상하고 있다. 이르면 이달 중 시행령 초안을 완성해 산학계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AI 기본법은 AI 산업 진흥과 규제 사이 적절한 균형점을 맞춘다는 취지로 탄생했지만 애초 의도와 달리 제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국내외 산학계는 물론, 국회입법조사처와 미국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까지 세부 내용의 신중한 검토를 요구한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부도 본격적인 시행도 전에 대대적인 법안 손질에 나섰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지난 11일 월례 브리핑에서 AI 기본법 관련해 "AI 산업이 초기 단계인 점을 고려해 최소한의 규제 사항만을 포함하겠다"고 강조했다. 규제 대상과 수준을 해석할 때 신중을 기하는 동시에 이해관계자들에게 폭넓은 의견 수렴을 실시하겠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발언이 무색하게 업계 안팎에서 보는 AI 기본법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과기정통부가 총괄하는 AI 기본법 하위법령 정비단에는 산업계‧학계‧법조계 전문가를 비롯해 국가AI위원회 법제도분과와 법제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정비단 인력 중 법률 전문가 비중은 높지만 정작 기술 전문가는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참여를 제의받은 전문가 가운데 일부는 형식적인 의견 수렴 절차 때문에 활동을 고사한 경우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정부의 폐쇄적인 논의를 지켜본 업계와 학계 전문가들은 AI 기본법 개정을 위한 자발적인 연구에 나섰다. 당장 내년부터 시행이 공식화한 만큼, AI 기본법에 담긴 중복 규제나 체계적 정합성 등을 충분히 살펴야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는 지난 6일 'AI 기본법 하위법령 의견수렴 창구'를 개설했다. 이어 14일에는 한국인공지능법학회가 'AI 기본법 개정연구위원회'를 발족해 AI 기본법 개정안 마련에 착수했다. 정부가 AI 기본법 시행령 초안을 내놓겠다고 예고한 시기에 별도의 업계 소통 창구가 생기고 있다는 건 이를 향한 산학계 우려 정도를 짐작케 한다.

AI 기본법을 수술대에 올린 정부가 CCTV를 두기는커녕 환자·보호자와의 소통에 소홀하니 산학계가 알아서 움직이는 셈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 등장과 맞물려 세계 각국이 AI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지원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우리 정부도 현장에서 내미는 손을 진심 어린 태도로 잡아줘야 한다.

이나연 기자
lny@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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