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기훈 기자] 우리은행이 가계대출뿐만 아니라 기업대출마저 공격적으로 줄이고 있다.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하기 위해선 보통주자본비율(CET1)을 지금보다는 안정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데 넘쳐나는 대출 잔액들이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우리은행이 리딩뱅크 등극과 기업금융 명가 부활을 천명했던 만큼, 이러한 공약들이 자칫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우리은행이 임직원 인사 평가 기준인 핵심평가지표(KPI)의 산출 기준을 11월에서 10월로 변경했다. 또, 대출 잔액을 줄이면 KPI 평가에 가산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그룹장 여신금리 전결권 또한 올해 연말까지 일시 중단한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영업점 차원에서의 우대금리를 사실상 중단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은행이 대출 옥죄기에 나선 데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제한 정책과 우리금융지주의 M&A 셈법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우리금융지주는 비은행 강화의 핵심인 동양생명과 ABL생명 동시 인수를 목전에 둔 상황이다. 당국의 최종 승인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는데, 인수를 위해선 적정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3분기 기준 우리금융의 CET1은 12%에 불과해 당국의 권고치인 13%를 훨씬 하회하고 있다.
위험가중자산(RWA) 성장률 또한 3분기 기준 8%에 달한다. 이는 다른 금융지주들이 5~7% 수준인 것과 비교해도 높은 수치다. 즉, 자산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이와함께 기준금리 인하로 고금리 기조는 다소 주춤해 졌지만 기업 연체율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기업대출은 일반적으로 RWA가 늘어나는 주범으로 꼽힌다. 이에 우리은행이 기업대출을 줄여 RWA를 낮추고 지주의 CET1은 높이려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우대금리를 없애고 KPI 산출 기준을 변경함에 따라 올해 기업대출 영업이 사실상 '개점 휴업'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은 두 달 동안 대출 영업을 할 동력이 사라져서다.
한편으론 우리은행이 천명했던 리딩뱅크 등극과 기업금융 명가 부활 선언 또한 차질이 예상된다는 관측이다.
올해 초 개최된 2024년 경영전략회의에서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올해 시중은행 중 당기순이익 기준 1위를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고, 그에앞서 작년 9월부터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선언하며 공격적으로 기업대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우리은행은 2027년까지 기업대출과 가계대출의 비중을 6대4로 전환하고 시중은행 중 기업금융 1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며, 작년부터 일선 현장에선 기업대출 영업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가 강화됐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두 목표를 위해 기업금융전담역(RM)을 포함한 많은 영업점 직원들이 달려왔는데 갑자기 전략을 수정해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연초부터 역마진을 감수하면서 우량기업과 중소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유치했는데 이번 조치들로 인해 다른 은행으로 고객들이 유출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기업금융 명가 재건은 물론 리딩뱅크 달성은 당분간 물건너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장과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조 행장은 지난달 31일 임직원 편지를 통해 "미국 대선 등 대외 환경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고 이에 연말까지 은행으로선 자본비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며 "KPI 기준 변경 등 정책 변화로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 또한 "기업대출 자체를 중단한 게 아니라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속도 조절을 위해 이러한 조치들을 시행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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