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숫자에 집착한다. 그런점에서 양종희 KB금융 회장의 지난 1년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양종희 회장이 전임 윤종규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고 취임한 지난해 11월17일 KB금융지주의 주가는 5만4600원이었다. 그리고 1년뒤 11월18일의 주가는 9만1500원이다.
온전히 양 회장의 개인기라고 볼 수 없겠지만, 어쨌든 숫자로만 본다면 KB금융의 가치를 무려 1년만에 67.5%를 끌어올렸다.
무겁기로 유명한 금융주가 이렇게 급등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과연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그런데 사실 알고보면 별 특별한 일은 없었다.
윤 정부가 올해초 주도한 밸류업 정책에 최대 수혜를 받은 결과다. '4.10 총선'을 2개월여 앞둔 올해초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발표되면서 시장 일각에선 ‘선거를 앞두고 의도적인 주가띄우기’라는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이 때부터 대표적인 '저 PBR'주로 분류된 은행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밸류업의 수단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은 전통적으로 주가 상승에 강력한 재료로 손꼽혀왔다.
KB금융뿐만 아니라 상장된 4대 금융지주사의 주가가 모두 밸류업 테마의 수혜를 봤다. 그중에서도 KB금융은 특히 두드러졌다.
더구나 KB금융은 보통주자본비율(CET1)까지 높아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위한 기초체력까지 좋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KB금융이 밸류업에 그렇게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있었다.
올해 초 홍콩ELS 사태로 인한 막대한 손실금이 발생하면서 KB금융에 적지않은 타격이 됐다. 올 1분기 실적에서 KB금융은 무려 8620억원에 달하는 ELS사태 손실 충당금을 적립해야했다.
여기에 리딩금융 위상에 먹칠을 한 내부통제 사고 또한 적지않았다. KB금융에겐 분위기를 전환할 무언가가 필요한 듯 보였다.
KB금융 입장에선 주주들을 달래고, 투자자들의 불안을 불식시킬 재료로써 때마침 밸류업만한 수단이 없었다.
KB금융은 올해에만 8000억원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고, 양종희 회장은 밸류업 홍보 영상에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다.
4대 금융중 KB금융이 밸류업에 유독 집착하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근의 국내 상황은 이러한 KB금융의 밸류업 올인 전략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후폭풍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리면서 밸류업 정책의 추진 동력이 급격하게 둔화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으로 CET1비율의 하락 압력 등 자산건전성 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제는 밸류업을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 것이다.
당연히 이런 우려를 반영, KB금융의 주가도 최근 급락했다. 무엇보다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거셌다. 밸류업으로 남은 것은 결국 주가 밖에 없는데 그나마 최근에는 10만원을 넘어가던 KB금융의 주가도 8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사실 최근의 이같은 상황 전개는 KB금융의 능력밖의 일이다.
하지만 한 발짝 떨어져보면, KB금융이 만사를 제쳐두고 이처럼 밸류업에 그렇게 올인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현재로선 숫자(주가)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밸류업 보다는 KB금융이 신경써야할 다른 중대한 현안들이 적지 않기때문이다.
올해 KB금융은 리딩금융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적지않은 내부통제 사고를 드러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8월22일부터 10월3일까지 6주간 KB금융과 KB국민은행에 대해 각각 고강도의 정기검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또 다시 총 147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3건이나 드러나 금융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앞서 KB금융은 올해들어 100억원 이상의 배임사고만 3건에 달했으며, 이런 와중에 증권사 골프 접대 논란까지 불거져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기도 했다.
또한 은행의 본질적인 서비스 경쟁력을 위해 지난 2022년부터 3년간 ‘코어뱅킹 현대화’(Core Banking Modernization)라는 이름으로 추진해왔던 국민은행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도 우여곡절 끝에 사실상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그 '우여곡절'속에는 KB금융 및 국민은행 경영진 및 IT조직내 내부갈등과 같은 듣기 민망한 뒷얘기들이 적지않아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최근 국민은행은 오는 2030년까지 코어뱅킹1, 코어뱅킹2로 기능을 구분하는 '코어뱅킹 현대화' 추진 계획을 새롭게 내놓았다. 하지만 국내 은행권에선 혁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폐쇄형인 'IBM 메인프레임 환경'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본질적 한계때문이다.
또 지난 1년6개월동안 진행해왔던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현 KB뱅크) 차세대시스템(NGBS)프로젝트 역시, 올해 8월 오픈이 연기되고 주사업자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시스템 개통이 내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부코핀은행의 부실이 좀처럼 잡히지않고 KB금융 실적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이는 뼈아픈 실패다. 차세대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극복하려했었기때문이다.
결국 KB금융이 밸류업에 신경을 쏟는 것의 반만이라도 드러나지 않았던 자신의 약점을 보강하는데 더 전력을 기울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내부통제의 혁신, M&A(인수합병), IT 품질의 향상 등이다. 시간을 되돌릴수는 없겠지만 KB금융이 앞으로라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워질려면 생산성을 높이기위한 본질 경쟁력에 집중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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