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설연휴 전인 지난 24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에선 가장 눈길을 끈 핵심 키워드는 ‘실용주의’과 ‘탈이념’이었다.
조기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의 메시지로도 읽히지만, 당장은 설연휴 이후 나타나게될 제1야당의 정책 스탠스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다.
이 대표는 이날 모두 발언에서 “시대착오적인 친위 쿠데타로 너무 많은 것이 파괴되고 상실됐다. 이제 회복과 성장이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가 됐다”며 “이념과 진영이 밥먹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든 희든 쥐만 잘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니겠나. 탈진영, 탈이념, 현실적 실용주의가 성장 발전의 동력, 진정한 민주공화국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정치권에선 이 대표가 ‘우클릭’ 했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다만 ‘정치 철학이 왜 변했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 대표는 “이는 선택과 우선순위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기존 철학이 바뀐 것이 아니라) 지금은 경제적 안정과 회복, 안정이 가장 시급한 상황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흑묘백묘(黑貓白貓)론은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 덩사요핑이 경제정책에 자본주의적 요소를 크게 강화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실제로 1990년대 초반,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이후 중국은 상하이, 선전 등 해안 경제 특구를 중심으로 30년 가까이 성장주의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결국 미국과 패권을 겨루는 G2의 지위에 올라섰다.
◆'이자장사' 비판으로 좌불안석 은행권… 정치권 외풍 사라지나
한편 이같은 이 대표의 정치‧경제적 스탠스의 우클릭은 금융권을 비롯한 산업계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지난 20일, 이 대표와 ‘6대 은행장’(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농협, 기업은행)과의 간담회로 인해 다양한 해석이 나왔던 은행권의 경우, 아직 관망세이긴하지만 한시름 놓는 분위기다.
이 대표는 당시 간담회에서 “상황이 어려울수록 어려울수록 힘 없는 사람들이 더 많은 고통을 겪는 것이 현실이며, 은행권이 준비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방안을 충실히 이행해달라"고 당부했지만, 앞서 일각에서 제기한 가산금리 인하 등 은행권을 압박하는 모양으로 비쳐질 수 있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정치권이 금융기관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금융기관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듣기 위한 자리"라고 안심시켰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 대표가 ‘실용주의와 성장’을 키워드로 제시한 만큼 시장 자율을 강조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은행이 '법정 비용'으로 보는 각종 보험료와 출연료 등을 가산금리에 넣어 대출자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막는 방안을 추진해왔는데, 이 기조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앞서 지난해 12월 30일 민병덕 의원 등 11명의 의원이 발의한 은행법 일부개정 법률안에선 지급준비금, 예금자보호법에 따른 보험료·주택금융신용보증기금에 대한 출연료를 가산금리 산입 금지 항목으로 명시한 바 있다. 은행권에선 이를 규제로 인식하고 있다.
가뜩이나 올해는 금리인하 상황으로 인해 순이자마진(NIM)의 악화가 예상되면서 은행권이 영업력 강화를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금리 압박이 추가될 경우 수익내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물론 윤석열 정부에서도 은행권은 외풍(?)에 시달린 바 있다.
지난 2023년 10월, 당시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들께서 죽도록 일해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는 거친 표현으로 은행권을 직격한 바 있다.
이후 ‘민생금융’ 이슈가 불거지면서 은행별로 수천억원을 ‘민생금융 패키지’라는 명목으로 사회에 환원해야했다.
대표적으로 KB국민은행의 경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이자 캐시백 등 총 3721억 원 규모의 민생금융 지원에 나서야했다. 공통 프로그램인 ‘이자 캐시백’ 지원 3005억 원과 자율 프로그램 716억 원을 합친 액수로, 국내 은행권에서 가장 많은 규모다. 이같은 민생금융 금액은 지난해 금융지주사들 실적에서 고스란히 '비용'으로 반영됐다.
이를 놓고 금융계에선 ‘신관치금융’ 이란 비판이 나왔으나 서슬이 시퍼런 집권 초반기라서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한편 지난해 초부터, 윤 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기업가치제고(밸류업, Value-up)에는 계속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은행권의 경우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밸류업을 지속하기위한 건전상 지표 등 기초체력을 확보하기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은행 수익이 뒷받침돼야한다. ‘이자제한’ 등 관치금융 또는 법제도적인 규제 요소가 적으면 적을수록 은행 수익성은 개선된다.
금융권은 이재명 대표가 신년기자 간담회에서 구체적으로 금융권 현안과 관련한 성장 전략을 별도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기본 방향성을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치적 리스크로 인한 밸류업 정책의 불확실성이 완화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이 대표가 윤 정부가 취한 정책에서도 지지할 수 있는 것은 지지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금융 밸류업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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