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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BGA 투자 딜레마…'서행' 韓 vs '급행' 日·臺, 승자는? [IT클로즈업]

김도현
- CPU·GPU 공급난 지속 여부 관건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면서 패키징 기판 공급난이 심화하고 있다. 고부가 제품으로 꼽히는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가 부족 사태의 중심에 있다. 공급량 확대를 위해 업계의 투자가 이뤄지는 가운데 국내와 해외 기업 간 온도차가 나타나고 있다. 수조원 자금 투입을 집행했거나 앞둔 일본·대만에 비해 한국은 속도가 더딘 편이다. 이같은 행보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돈다발 들고 찾아오는 고객사=속도 차이는 있으나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든 반도체 기판 업체가 공감하는 분위기다. FC-BGA는 볼 형태 범프로 연결하는 인쇄회로기판(PCB)이다. 칩과 기판이 밀착돼 적은 신호 손실과 빠른 전달력이 강점이다.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패키징에 주로 쓰인다. 전 세계적으로 두 제품의 수요공급 불균형이 발생하면서 FC-BGA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것이다.

전례 없는 상황에 갑을 관계가 뒤바뀌었다. 인텔 AMD 등 기성 반도체 제조사는 물론 자체 칩 개발에 나선 데이터센터 기업까지 반도체 기판 회사에 역으로 투자를 제안하는 분위기다. 자금을 대는 대신 일정 물량을 확보해달라는 요청이 연달아 들어온다는 후문이다.

이에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 이비덴 신코덴키 등은 대형 투자를 단행했다. 양사는 지난해만 2~3조원을 쏟아부으면서 고객사 요청에 부응했다. 후지쿠라 메이코 교덴 등 중견 업체들도 FC-BGA 투자에 집중했다.

대만도 세계 3위 유니마이크론을 비롯해 난야PCB, 킨서스 등이 각각 1~2조원 내외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작년에 이번 올해까지 공격적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오스트리아 AT&S도 FC-BGA 등 고부가가치 기판 사업에 3조원 이상을 쓰기로 결정했다.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반도체 후공정 생산라인이 밀집한 지역에 공장을 설립할 계획이다.

상대적으로 FC-BGA 시장이 작았던 한국 업체도 기지개를 켰다. 삼성전기는 베트남 법인에 1조원 이상을 투입한다.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 등 수익성이 악화한 제품 대신 FC-BGA에 집중하겠다는 의도다. LG이노텍은 작년 사업화 논의를 마치고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장비 발주를 시작하는 등 공장 구축이 초읽기다. 대덕전자와 코리아써키트 등도 삼성전기와 같은 이유로 FC-BGA를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했다. 투자 전후로 고객사 수주를 따내면서 생산능력 확대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관련 협회와 일부 기업 사이에서는 국내 투자 규모나 속도가 국외 업체에 밀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의미다. 반도체 기판업계 관계자는 “FC-BGA 성장세가 확실한 만큼 전폭적인 지원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이대로면 일본과 대만 등에 계속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기판 언제까지 부족하나=일각의 우려와는 다른 관점도 존재한다. FC-BGA 공급 부족이 어느 시점까지 지속할 것이냐에 초점을 맞추면 무조건적인 투자가 능사는 아니라는 시각이다.

FC-BGA 공급난 자체가 코로나19에 비롯된 만큼 시장 전망은 엇갈린다. 앞선 지적처럼 당분간 현 사태가 이어진다는 예상과 PC 노트북 등 수요가 줄어들고 글로벌 유통망이 안정화하면 분위기 바뀔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패키징 업체 관계자는 “국내외 업체의 투자 경쟁에 불이 붙은 상태인데 신공장들 가동 시점에서는 공급 과잉이 발생할 수도 있다. 2025년 전후로 FC-BGA 생산량이 급증하면서 수익성 하락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팬아웃이라는 첨단 패키징 기술이 확산하는 점도 고려 요소다. 팬아웃은 가공이 끝난 웨이퍼에서 자른 칩을 그대로 포장하는 공정이다. 웨이퍼 상태에서 입출력(I/O) 단자 배선을 바깥으로 빼내 늘리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PCB가 필요 없어진다. 아직 PCB를 활용한 패키징이 90% 이상이지만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등 리딩 기업들은 팬아웃 비중을 늘려갈 방침이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 등도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스마트폰과 함께 급성장했던 고밀도회로기판(HDI) 사업이 중국 저가공세로 적자 전환한 경험을 체득한 영향이다. 양사는 나란히 HDI 시장에서 철수한 바 있다.

일본과 대만이 서버용 FC-BGA 물량을 대부분 차지하는 부분도 대형 투자를 고민하게 하는 지점이다. 국내 1위인 삼성전기마저 PC용 FC-BGA만 납품 중이다. 물량이나 수익성 등을 감안하면 서버 분야를 공략하는 것이 이득이 크다. 다만 기술력 차이, 고객사와의 관계 등으로 진입이 쉽지 않다. 삼성전기가 올해 하반기부터 서버용 제품 생산을 예고한 가운데 시장 반응에 따라 추가 투자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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