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윤리 부재] 이태원 참사가 드러낸 인터넷 소비 현주소
[디지털데일리 이나연 기자] 서울 이태원에서 대규모 압사 사고가 일어난 가운데, 온라인상에서 당시 현장 모습이 무분별하게 공유되고 희생자들에 대한 조롱 등 2차 가해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디지털 윤리 재고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일 일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기사 댓글에는 사고 발생 4일 차인 지금까지도 사고 현장을 여과 없이 담은 사진과 영상, 사망자와 부상자를 겨냥한 비하성 표현이 여전히 게시됐다.
◆SNS 타고 순식간에 공유된 참사 모습, 희생자 2차 가해 가속화=지난달 29일 참사 이후 온라인 중심으로 관련 사진과 영상, 혐오성 발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고 직후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에서는 ‘이태원 압사 사고’ 관련 해시태그 등을 통해 현장을 목격한 이들이 찍은 사진과 영상이 실시간 유통됐다.
이로 인해 압사로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 얼굴, 시신들이 바닥에 눕혀져 있는 광경, 구급대원들이 일렬로 피해자들에게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튜브나 틱톡 등 영상 플랫폼에선 자극적인 제목과 함께 충격적인 사고 모습들이 담긴 게시글이 우후죽순 올라왔다.
일례로 한 유튜브 채널 경우, ‘이태원 핼러윈 압사 사고 전후 상황’이라는 이름으로 제보 영상을 모은 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영상을 누르면 “다음 콘텐츠는 유튜브 커뮤니티에 의해 일부 시청자에게 부적절하거나 불쾌감을 주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뜨지만, 확인을 클릭하면 곧바로 영상 시청이 가능하다. 이날 오전 기준 영상 조회수는 111만회에 달한다.
참사 이후 해당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속보나 보도가 잇따르면서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방문한 사람들을 조롱하는 비하성 댓글도 다수 발견됐다. 관련 플랫폼들은 이용자들에게 게시글 및 댓글 작성에 주의를 요청하고 신고된 유해 콘텐츠를 차단하는 등 곧바로 대응에 나섰으나, 수백 수천 건에 이르는 모든 게시글과 댓글을 막기엔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혐오 재생산 악순환 끊으려면 정부, 사업자 협력 필요”=전문가들은 이같은 악성 콘텐츠 및 댓글로 인한 여러 피해와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윤리의식 제고와 더불어 법적 처벌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범수 연세대 바른ICT(정보통신기술)연구소장은 “악성 댓글 역사는 오래됐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서, 남을 비난하고 싶어서,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서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의견을 표시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연구소장은 악성 댓글에 대한 국민과 정부, 플랫폼 기업들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악성 댓글 내용과 가해 양상이 사회 변화에 따라 함께 달라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연구소장은 “온라인 활동 성격상 획일적인 처벌의 강화나 일반적인 법제도 수립이 상당히 어렵다”면서 “악성 댓글이 확산하는 플랫폼. 악성 댓글 유형, 가해자 및 피해자 특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범죄적인 표현을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 밖에 있으나, 문제는 해당 표현의 불법성 여부 판단에 따른 어려움”이라며 “만약 정부의 법적 강제가 없다면 플랫폼 사업자 등 민간에 의한 자율규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사업자가 자체 약관에 의해 이용자에게 혐오 표현을 금지하는 계약을 맺는 것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삭제된 콘텐츠가 정당한 것으로 밝혀졌을 경우, 플랫폼 사업자가 작성자에게 역으로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위험이 생긴다. 이에 최 교수는 “정부는 이들 사업자가 관련 문제를 겪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 같은 인센티브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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