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칼럼

[취재수첩] 오라클과 HP, 그리고 인텔

백지영 기자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주 IT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오라클이 인텔의 유닉스용 프로세서인 아이태니엄의 차세대 버전부터 자사의 소프트웨어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는 지난 2000년대 초반 인텔과 HP가 공동 개발한 이후, 많은 고객사가 이를 자사의 핵심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HP 유닉스 서버에 탑재되는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비중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HP 유닉스 서버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오라클의 기업용 소프트웨어 데이터베이스(DB) 제품군은 HP의 유닉스 서버와 함께 난공불락의 경지로 경쟁사인 IBM 등에 대응하면서 지난 10여년 간 시장을 확산시켜 왔다.

오라클의 공식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번 결정은 인텔
이 아이태니엄보다는 x86 프로세서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인텔의 고위 임원들과의 논의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돼 있다.

그러나 HP는 즉각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자료를 내놓고, 앞으로도 자사의 유닉스 서버에서 기존 오라클 소프트웨어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인텔의 폴 오텔리니 회장 및 최고경영책임자(CEO)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는 “아이태니엄 아키텍처를 사용하는 HP-UX(HP의 유닉스 운영체제)와 다른 고객들을 위해 경쟁력 있고 장기적인 로드맵을 지속적으로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4월 개최될 베이징 인텔 개발자 포럼(IDF)의 기조연설에서 차세대 아이태니엄 프로세서인 폴슨(Poulson)을 공개하겠다고도 밝혔다.

이에 오라클은 다시 한번 공식 성명을 발표하고 “HP 데이비드 도나텔리 수석 부사장은 이번 오라클의 발표가 고객들에게 수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부과함으로써 위험 요소를 증대시킬 것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그 반대”라고 반박했다.

오라클은 고객들에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사전에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이 자사의 IT 인프라를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책임을 다했다는 것이다. 즉 HP는 이미 인텔이 아이태니엄보다는 x86 프로세서에 집중하고 있고 곧 x86이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를 대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HP와 경쟁관계에 있는 자사의 유닉스 서버 사업(썬)의 부흥을 꾀할 것이라는 속내도 있겠지만 말이다.

HP와 오라클의 갈등은 이미 지난 2009년 4월,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 계획 발표 직후부터 예고돼 왔다. 한때 찰떡궁합을 자랑했던 두 회사지만, 오라클이 성추문으로 사임한 마크 허드 전 HP CEO를 자사의 공동사장으로 영입한 직후부터 양사 간의 갈등은 더욱 깊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핵심은 어찌됐든 인텔이다. 오라클이 보도자료에 언급한 인텔 고위 임원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HP는 오라클의 이번 처사가 썬의 유닉스 서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불공정한 행위라고 비난했지만, 인텔의 아이태니엄 프로세서에 대한 의지가 과거에 비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인텔은 지난해 과거에 비해 성능이 대폭 향상된 x86 서버 프로세서인 네할렘과 네할렘-EX. 웨스트미어 등의 제품군들을 발표하며, 특히 오라클(썬)의 유닉스 서버 프로세서인 스팍(SPARC)칩의 비교에 열을 올려왔다. 스팍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가 자체 개발한 유닉스용 칩이다.

인텔은 최근 몇년 간 자사의 x86 서버 프로세서 신제품을 발표할 때마다, 이것이 썬의 유닉스 서버 프로세서인 스팍보다 월등하다고 강조해왔다.


국내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인텔은 공식적으로는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를 x86 프로세서와 함께 계속해서 주력할 것이라고 밝혀왔지만, 최근의 행동을 살펴보면 의구심을 들게 하기 때문이다.

인텔코리아는 몇년 전부터‘리스크(RISC) 서버 마이그레이션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유닉스 서버에서 x86 서버로 전환하자는 뜻을 전달해왔다. 직접적으로 아이태니엄 프로세서를 탑재하는 HP의 유닉스 서버를 대체해야 한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오라클의 스팍이나 IBM의 파워 프로세서 기반 유닉스 서버들에 대해 칼날을 겨눠왔다.

기업들은 필요에 따라 파트너십을 맺었다가 환경 변화에 따라 결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HP와 오라클, HP와 인텔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HP, 인텔과의 논의 없이 갑작스럽게 이러한 중대 발표를 한 오라클이나 자사의 프로세서 비전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한 인텔에게도 역시 비난의 화살이 돌아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번 발표로 아이태니엄 프로세서 기반의 서버에서 오라클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온 기업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어선 안될 것이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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