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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IT의 산증인…그러나 굳게 입을 닫다

박기록 기자

[IT전문 미디어블로그 = 딜라이트닷넷]

아마 미리 약속이 돼 있지 않았었더라면 그는 기자인 저를 절대로 만나주지 않았을 겁니다.


보나마나 최근 발생한 농협 전산마비 사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죠.

그는 바로 IBK시스템의 김광옥 대표(사진)입니다.

지난 2008년 말, 갑작스럽게 농협을 떠났다가 지난해 11월 IBK그룹 계열의 IT자회사인 IBK시스템 대표로 화려하게 복귀했습니다.

김 대표는 과거 농협 IT분사장을 역임했고, 특히 농협의 최대 IT사업이었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인물.

업무 추진에 있어 특유의 뚝심, 조직을 장악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은행권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 IT업계에서도 유명했습니다.

농협이 아닌 IBK그룹에서 새출발한 그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당초에는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얼굴을 보고, 과거의 추억, 그리고 IBK시스템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들어보자.'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지난 12일, 농협 전산사태가 발생했고 이후 상황은 심각하게 전개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사고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해킹인지 내부자의 소행인지를 놓고 혼란은 계속됐습니다.

약속 날짜가 다가오자, 김대표의 얘기를 꼭 듣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농협 IT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마 농협 IT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저와 같은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지난 21일, 거의 2년만에 만나 환한 미소를 짓는 김대표에게 기자는 다짜고짜 농협 사태에 대한 질문부터 던졌습니다.


금융IT 분야만 10년 넘게 취재했지만 이번 농협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정말로 궁금했던 몇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대로(?) 그는 말을 극도로 아꼈습니다.


민감한 질문에도 "수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며 형식적인 답변에 그쳤습니다.


지극한 사적인 질문에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히려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중 일부 잘못된 내용에 대해선 '그건 그게 아니다'며 적극적으로 해명했습니다.

(물론 농협 전산사태가 발생하자 농협측에서 김대표에게도 도움을 구했고, 적극적으로 시스템 정상화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는 후문입니다.)

약 1시간 가량 이어진 인터뷰 아닌 인터뷰, 비록 몸은 이미 떠났지만 농협 IT조직에 많은 애정을 느끼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얘기도중 농협 IT본부 분사의 직원들을 가르켜 아직도 '우리 아이들'이란 표현을 무의식적으로 쓸정도로 말이죠.

인터뷰 말미, 내내 말을 아껴오던 김대표가 오히려 부탁을 했습니다.

"지금 가장 고생하는 사람들은 농협 IT 직원들이다. 며칠째 잠도 못자고 정부 (특별)감사 받으랴, 언론 대응하랴 정신없을 것이다. 사고가 빨리 수습될 수 있도록 시간을 갖고 차분하게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업무의 정상화다. 그리고 나중에라도 그들을 다시 격려해 달라."

그 순간엔 마치 농협 CIO였던 예전의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농협 전산사태가 발생한지 이제 열흘이 훌쩍 넘어갑니다. 김대표와 인터뷰를 한지도 그새 또 며칠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양재동 농협 전산센터 앞에 장사진을 쳤던 취재진도 철수했고, 긴박한 상황은 대충 정리됐습니다.


무심하게 흩날리는 벚꽃, 그러나 농협 IT직원들에게 올해 4월은 잔인했습니다.

세상의 인심이 그들을 매몰차게 몰아부쳤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그들을 여전히 믿어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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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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