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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브로 실패에서 무엇을 배울까

채수웅 기자
- 이병기 전 방통위원 “체계적 정부 거버넌스 시스템 마련해야”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바야흐로 LTE 시대다. 2011년 하반기 이후 이동통신 시장의 트렌드는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LTE(Long Term Evolution)가 장악하고 있다.

LTE의 화려한 등장 이면에는 같은 4세대 이동통신 기술인 와이브로(WiBro)가 자리잡고 있다. LTE와는 달리 우리가 주도한 기술이다. 세계 이동통신 시장 제패를 노렸지만 지금은 주류에서 벗어나 개도국 등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기술 종주국인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KT와 SK텔레콤이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수년이 지나도록 가입자 100만명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숫자만 놓고 보면 명백한 실패다. 최근에는 와이브로 기반의 제4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도 불발로 돌아갔다. 와이브로의 미래는 이대로 끝나는 것일까?

이에 대해 와이브로 전도사로 불리웠던 방송통신위원회 1기 상임위원 이병기 서울대 교수는 늦은 정책 결정이 와이브로 활성화의 걸림돌이 된 것으로 분석했다. 한 때 와이브로 활성화를 정책의 최우선 가치로 내세운 방통위가 실패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합의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과감하게 밀어붙여야=기술변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ICT 시장에서 표준화 등이 바로바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합의제를 근간으로 하는 방통위 의사결정 구조상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파수 표준. 미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 모바일 와이맥스(와이브로)는 2.3~2.5GHz 대역에서 사업자당 10MHz를 활용한다. 우리나라는 2.3GHz 대역에서 8.75MHz를 사용하다 2010년 4분기에 10MHz로 조정이 됐다. 주파수 대역 변경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이에 대해 이병기 교수는 “한두달이면 끝날 수 있었던 것이 8개월 가량이 걸렸습니다. ICT 시장의 경쟁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인데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합의제를 원칙으로 하는 방통위 의사결정 구조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라고 회고했다.

“ICT에 이해도가 낮은 상임위원들은 판단이 잘 안서니 공부를 해서 의사결정을 하려 합니다. 누구 잘못은 아니지만 위원회의 시스템이 결국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신속하게 의사결정이 이뤄졌어야 하는 부분은 리더의 용단이 필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는 글로벌 반도체 사업자로 도약한 삼성전자 역시 과감한 결단이 시초가 됐듯이 정책 역시 가능성이 보이는 부분에 대해서는 밀어붙이는 결단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임원회의를 통해 결정했다면 아마 시작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일본 및 세계시장의 이해도가 높았던 이병철 회장이 동물적인 감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면 상식선에서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없었을 겁니다.”

정책 역시 상황판단을 토대로 한 의지표명이라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가능성이 있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비전문가 집단(상임위원회)에서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와이브로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하지만 이 교수는 아직까지는 실패로 보여지는 와이브로의 현주소에 대해 질책이나 책임을 묻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통신은 물론, ICT 기술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고, 그 때마다 정부, 사업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큰 틀에서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부의 거버넌스 시스템이 잘 마련돼야 합니다.”

와이브로 뿐 아니라 콘텐츠, 소프트웨어 등 부처간 나눠져 있는 진흥정책 역시 명확한 구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방통위는 출범 이후 지경부, 행안부, 문화부 등과 관련 업무를 놓고 마찰을 빚어왔다.

“앞으로는 과학기술, 방송통신 등은 물론, 정부조직의 틀을 짜는 기본 철학이 달라져야 합니다. 방통위 출범 이후 부처간에 서로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 배운 것이 있다면 부처간 업무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협력해서 잘하라는 것 보다는 단계별로 업무 영역을 확실히 구분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정보통신을 단순히 많은 종류의 산업 중 하나로만 치부했다면 지금의 IT 강국은 없었을 것이다. 새로운 도전으로 볼 수 있었던 정보통신부를 새로 만들고 집중한 결과 지금의 IT강국이라는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성공으로 인한 자신감을 버려야 다른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우리는 산업시대 패러다임에서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성공방식을 지식기반 사회에도 적용하려고 합니다. 소프트웨어가 그렇습니다. 사람수에 단가를 적용하는 식으로는 소프트웨어의 발전은 없습니다. 큰 물고기는 듬성듬성한 그물로 잡을 수 있지만 작은 물고기에는 다른 그물이 필요한 법입니다.”

모든 사안에 접목할 수 있는 성공방정식은 없다는 것이다. 버려야 새로운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와이브로 여전히 가능성 있다=쉽지는 않겠지만 여전히 와이브로에게 기회는 열려있다는 것이 이 교수의 견해다. 글로벌 시장에서 LTE가 대세로 자리 잡은 만큼, 이동통신 시장의 주축으로 올라설 수는 없겠지만 제4이동통신사 출범을 통해 최소한 이동통신 요금 인하 및 소비자 선택권 확대라는 기존 정부 정책목표 달성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지금도 하겠다는 곳이 있다면 줘야 합니다. 자금 등 여러 가지 판단할 부분이 있겠지만 사활을 걸고 돈을 낸 사업자들이 알아서 잘 결정할 것으로 봅니다. 데이터량이 많이 늘어나고 있고, VoIP에 케이블TV 사업자들과 연계한다면 지금도 와이브로 자리는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사업자들이 신중하게 결정할 일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과거 실패를 원망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미래에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발전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채수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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