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일 칼럼

[취재수첩] 잡음 많은 ATM 업계, 원인이 뭘까

이상일 기자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금융자동화기기(ATM)을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청호컴넷은 노틸러스효성과 LG엔시스를 가격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국내 ATM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이들 양사의 가격 담합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 ATM 사업을 관장하는 롯데그룹의 계열사인 롯데피에스넷의 2대 주주인 케이아이비넷은 롯데그룹이 롯데피에스넷의 ATM 구매 과정에서 중간거래상으로 롯데알미늄을 끼워넣고 중간수수료 32억 원을 챙겼다고 주장하며 공정위에 부당지원 행위로 신고했다.


이처럼 ATM 시장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은 국내 ATM 시장이 폐쇄적이고, 과점적인 구조라는 시장 특성에 기인한다.

또 금융 비대면채널 활성화와 유통 부분에서의 전자거래 플랫폼이 본격 활성화되면서 과열 경쟁양상으로 다시 전환되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국내 ATM 시장은 지난 2010년까지는 4개 업체가 과점해오다가 지난해 5월, 청호컴넷이 FKM의 인수를 결정하면서 3개사 구도로 재편됐다. 노틸러스효성과 LG엔시스, 청호컴넷은 시중은행 및 증권사, 그리고 일부 유통점과 독자 ATM 서비스를 진행해 왔다.

올해 은행권 IT예산 중 신규투자로 잡혀있는 것은 ATM이 유일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매년 은행권에선 ATM 예산을 고정적으로 투입해왔다. 노후 기계의 교체수요와 신규 지점 개설에 따른 ATM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은행권의 지점수 증가가 정체에 이르면서 신규 보다는 노후 기계에 대한 교체수요가 많아지긴 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스마트 브랜치 등 금융자동화기기 기반의 요구사항이 높아지면서 다시 신규 물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금융자동화기기 시장은 수요처가 한정돼 있는 시장이다. 대형 은행이 더 생기지 않는 한 매년 교체수량도 대부분 예상이 가능할 만큼 알려져 있는 시장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정된 시장에서 경쟁체제가 이뤄지다 보니 그동안 ATM 업체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영업 협력(?)이 이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의 '암묵'이 말 그대로 '담합'이었는지, 아니면 수요자 독점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방어적 수단'이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수요처가 한정돼 있다보니 ATM 업체들로선 경쟁에 대한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다. 사사건건 정치 공학적인 해석이 뒤따른다. 그렇다 보니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지폐 환류시스템을 독자 개발하는 등 기술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으며,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다각적인 협력의 결과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내고 있다.

사실 ATM은 국내 수출품 중 주요 핵심 부품을 외산에 의존하는 다른 기기와 달리 완제품 형태로 공급되는 흔치 않은 사례이기도 하다. 자체 기술을 통해 해외 시장을 노크할 수 있는 몇안되는 IT제품이라는 뜻이다.

특히 ATM을 통한 국내 금융서비스 환경은 해외 사례를 크게 앞지를 정도로 IT기술의 접목이 잘 돼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최근 금융협의회에서 독자 CD/ATM SW표준을 제정할 만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위한 작업도 착실히 진행되고 있다.

다만 국내 시장의 한계가 여전히 엄연한 가운데, ATM 업체들의 사생결단식 이전투구는 시장의 공감을 얻어내지 못한다.


물론 논쟁은 필요하다. 특정 사안에 대해 찬-반 논쟁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시장은 더 성숙해진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켜야할 '최소한의 룰'을 전제로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시장의 후폭풍이 충분히 예견되는 상황임에도 단순히 경쟁사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로써 '원가공개'는 최소한의 룰을 벗어난 것이다.

더구나 이제는 핵심부품의 국산화로 ATM 시장이 국산과 외산으로 재편된 상황에서 과거처럼 '동일한 원가'를 기준으로 한 원가 논쟁은 의미가 없고, 생산적인 결과도 기대할 수 없어 보인다.


<이상일 기자>2401@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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