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메모리 치킨게임 끝났다…게임의 법칙도 변했다
[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전동수 삼성전자 DS총괄 메모리 사업부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메모리 치킨게임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독일 키몬다는 공중 분해됐고 일본 엘피다도 마이크론에 인수되면서 메모리를 공급하는 업체가 사실상 3~4개로 줄어들었다는 게 이유다. 그는 최근 업계의 ‘자율 보정 능력’이 좋아졌다고 진단했다. 공급이 넘쳐 가격이 떨어지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줄이게 된다는 것이다.
도시바가 낸드플래시 생산량을 줄이겠다는 발표를 하자 4분기 현재 낸드플래시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 그가 말하는 높아진 자율 보정 능력의 좋은 예다.
10여개 업체가 난립했던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처럼 공공연하게 ‘감산 발표’를 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공장 감가상각비는 매 분기 계상되고 직원들 월급은 똑같이 나가는데 감산을 단행하게 되면 그 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치킨게임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시절 ‘감산’이란 단어는 ‘백기를 들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메모리 가격 올려) 다 함께 잘 살아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의도적으로 감산을 입에 올렸던 후발 업체도 있긴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오히려 투자를 확대하고 물량을 늘리는 방법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엘피다가 파산하기 전인 2010년 11월 전동수 사장은 “물패 들고 따라오는 이들의 불장난을 저지하는 방법은 무지막지하게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라고 말했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수조원을 들여 화성에 16라인 메모리 공장을 새로 짓고 있었다.
결국 삼성전자는 엘피다를 파산시키고 경쟁 업체 모두를 적자의 늪에 빠트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는 일부 이익이 줄긴 했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로 시황이 급격하게 나빠졌던 작년 하반기부터 올 3분기까지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권오현 부회장은 경쟁력을 확신하듯 “시장이 있는데 적자를 낸다면 그건 운영이 잘못된 것”이라며 “부품 사업에서 절대 적자를 내지 않겠다”고 단언키도 했다.
이랬던 삼성전자의 메모리 사업부 수장 입에서 “앞으로 치킨게임이 없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다운텀에서 대대적인 물량 밀어내기는 하지 않을 것이고 공격적 투자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전 사장도 “불경기 때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호황일 때 왕창 벌어들이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시바와 SK하이닉스의 ‘앞으로 잘해봅시다’라는 메시지에 화답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도시바의 공공연한 감산 발표는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SK하이닉스도 지난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올해 투자를 일부 축소하고 증산도 자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은 전 사장이 기자들과 만나기에 앞서 “메모리 업체가 3~4개로 줄어든 상황에서 과거처럼 무모하게 치킨게임 전략을 펼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었다.
삼성전자가 물량 확대에 소극적으로 나선다면 SK하이닉스-도시바-마이크론으로 이어지는 메모리 반도체 3중 업체들의 향후 실적은 크게 호전될 것이다. 현재 낸드플래시 가격이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는데, D램도 이러한 상황이 재연되지 않으란 법이 없다. 지금이라면 메모리 가격을 올려서 보는 이익이 감산으로 공장을 놀려서 보는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엘피다가 파산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우선 미세공정 전환으로 원가를 낮출 수 있는 여력이 과거와 비교해 낮아졌다는 점은 치킨게임의 중단을 부추겼다. 지금까지는 대규모 시설 및 공정 투자→원가경쟁력 확보→시장 경쟁력 우위라는 경쟁 공식으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움직였다. 남들보다 원가경쟁력이 높은 삼성전자는 다운텀에서 출혈 경쟁을 유도해 ‘나는 남고 너는 손해보는’ 치킨게임을 이끌었었다.
그러나 현재의 미세공정은 10~20나노대로 한계치에 근접했다. 10나노대 D램을 찍을 수 있는 노광 장비의 개발 지연으로 2014년 혹은 그 이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에 먹힌 엘피다나 거의 비슷한 공정으로 D램을 생산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연말 양산을 시작한 20나노대 D램의 비중 확대가 지지부진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지금은 범용 제품 비중이 줄어들어 예전처럼 찍어내면 어떻게든 팔리는 그런 시대도 아니다.
메모리 수요 업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사실은 치킨게임 중단이라는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낸드플래시는 애플 아니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가 대부분의 수요를 이끈다. 수익성이 높은 모바일 D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애플에 물량을 대려니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상황(메모리, 디스플레이, 배터리 사업에서 애플 비중을 줄이고 있는)을 보면 그룹 컨트롤타워에서 남지 않으면 팔지 말라는 강력한 주문이 내려왔을 수도 있다.
수요 업체가 줄어들면 치킨게임은 의미가 없다. 삼성전자는 이미 둘 중 하나를 배제했는데, 시장 전반적인 공급량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꼈을 것이다. 결국 도시바 등 대규모 적자를 내고 있는 경쟁사와 삼성전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봐야 한다. 공급량이 줄면 가격은 올라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메모리 시장의 가격 결정권은 애플과 같은 고객이 아닌 공급자 위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와 애플, 노키아, 모토로라, 소니, RIM, HTC, 심지어 LG전자까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가 경쟁사와 무언의 신사협정을 맺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 1년~2년 이상 지속된다면 누군가 하나는 더 파산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는 애플은 물론이고 남이나 다름 없는 무선사업부의 시장 독주 상황을 달갑지 않게 여길 지도 모를 일이다.
[한주엽기자 블로그=Consumer&Prosu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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