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격동의 생활가전②] 생활가전 신기술 경쟁, 소비자를 유혹하라

이수환 기자
[IT 전문 블로그 미디어=딜라이트닷넷]

[딜라이트닷넷 창간 4주년/격동의 생활가전]

경제 고도화 시기인 1980년대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진공청소기 등 생활가전 제품은 본격적인 대중화에 발판을 쌓았다. 이후 1990년대 각 업체의 치열한 경쟁은 일종의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한국 경제와 문화, 트렌드를 주도했고 일부에서는 감정싸움까지 서슴지 않았다.

지난 1990년 진행된 ‘퍼지’ 경쟁도 그 가운데 하나다. 1989년 퍼지 이론을 적용한 생활가전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우리나라도 관련 제품이 크게 늘어났다. 금성사(현 LG전자)가 출시한 퍼지 세탁기가 2개월 동안 5만3000대가 판매됐고 삼성전자도 컬러 TV,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 에어컨 등에 퍼지 기술을 적용했다.

퍼지 이론은 어떤 현상의 불확실한 상태를 표현하는 방법으로 지난 1965년 미국 버클리대학교의 자데 교수에 의해 만들어졌다. 퍼지 이론은 퍼지 집합, 퍼지 논리, 퍼지 숫자 등의 개념으로 나눌 수 있으며 에어컨, 자동차, 세탁기, 식기세척기, 공기청정기, 휴대폰 등 각종 전자제품에 널리 쓰인다.

퍼지 생활가전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급기야 금성사와 삼성전자는 서로의 퍼지가 더 우월하다는 광고까지 내놓게 된다. 두 업체가 관련 제품의 기술개발에 쏟은 돈만 500억원이 넘고 전담 연구개발(R&D) 인력을 배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얼마나 퍼지가 생활가전 분야의 뜨거운 감자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공기방울 세탁기의 등장=1991년 8월, 대우전자(현 동부대우전자)는 전 세계 최초로 공기방울을 이용해 세척력을 높인 세탁기를 개발했다고 발표한다.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세탁기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주변에 있지만 사라진 후에야 중요성을 깨달을 때 흔히 “공기 같은 존재”라는 말을 쓴다. 세탁기가 딱 그렇다. 로마 바티칸 교황청 기관지 ‘로세르바토레 로마노’가 20세기 여성 해방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제품으로 꼽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을 맞아 조사된 ‘한국인의 삶에 대한 생각’에서 여성의 삶을 가장 많이 변화시킨 물건 1위에 올랐을 정도다.

대우전자 공기방울 세탁기는 기존의 세탁기 관점을 완전히 뒤바꾼 혁신적인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마케팅도 대단했다. 수조에서 공기방울이 나오는 부분만 이끼가 끼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한 장면에서 시작된 광고는 소비자에게 신선함을 다가왔다.

금성사(현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즉각 신제품으로 맞대응했다. 가장 화끈한 움직임을 보인 업체는 삼성전자로 ‘삶는 세탁기’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가장 짧은 기간 동안 11억1000만원의 광고비용을 썼다. 대우전자는 8개월 동안 31억원, 금성사도 17억3000만원의 비용을 기꺼이 지출했다.

세 업체의 치열한 세탁기 경쟁은 국내 세탁기 보급률을 크게 높이는 원동력이 됐다. 여기에 세탁과 탈수가 분리되어 있던 이조식에서 두 기능이 하나로 합쳐진 일조식, 그리고 세탁 프로그램이 자동화된 전자동으로 빠르게 넘어오게 됐다.


◆육각수 냉장고 논란=냉장고는 어떨까. 공기방울 세탁기로 왁자지껄했던 시기 냉장고는 육각수 논쟁으로 뜨거웠다. 육각수는 말 그대로 물 분자의 구조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와 같은 형태인 육각면체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물을 말한다. 쉽게 말해 육각수를 마시면 몸에 좋다는 이야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업체는 막 LG전자로 사명을 바꾼 금성사였다. 1995년 삼성전자와 대우전자가 잇따라 육각수 냉장고를 출시했고 LG전자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감도 컸다. 당시 LG전자 냉기사업담당 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타사 냉장고는 육각수 제조 시스템이 허술하다”며 “우리 육각수를 먹고 바르니 머리카락이 났다”고 말했을 정도다.

이쯤이면 기적의 냉장고라고 불렸겠지만 막상 언론에서 해당 육각수 냉장고를 분리해보니 내부에 자석 2개가 전부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각 업체는 크게 반발하면서도 임상실험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슬그머니 육각수 냉장고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육각수 냉장고는 소비자 기억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렇게 냉장고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이유는 국내 냉장고 보급률이 포화상태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이미 1986년 냉장고 보급률은 95%에 달했다. 덕분에 수출물량이 크게 확대됐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전 세계 시장에서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관세청 발표에 따르면 2010년 냉장고 수출은 2009년 대비 41% 증가했으며 2011년 미국에서만 308만대가 판매되어 21억1500만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이수환기자 블로그=기술로 보는 IT]
이수환 기자
webmaster@ddaily.co.kr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디지털데일리가 직접 편집한 뉴스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