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IT

흔들리는 신뢰… 금융 ITO를 보는 냉정한 시각

박기록

- 금융 IT아웃소싱의 위기 (하)

[디지털데일리 박기록기자] 올해초 메리츠금융그룹의 IT서비스회사인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가 해체를 결정했다. 지난 2008년 메리츠금융그룹의 토털 IT아웃소싱을 맡기위해 각 계열사 IT인력으로 회사를 꾸린지 6년만이다. 300여명의 직원들은 올해 3월말까지 각각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 등으로 원대 복귀하게 된다.

대부분의 국내 2금융권 IT서비스회사들의 설립 배경이 그렇듯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도 당초 그룹의 IT자원의 통합관리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성과 IT비용을 줄이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기존 아웃소싱 체제에서 다시 백소싱체제로 IT지원전략을 전환하는 것은 아무리 오너십이 강한 2금융권이라고 하더라도 쉬운 것은 아니다. 메리츠금융정보서비스의 역할이 결과적으로 메리츠증권과 메리츠화재의 차세대시스템 프로젝트를 위해 만든 태스크포스(TF)로 끝나버린 것은 그룹차원에서 보면 중장기 IT지원 전략의 미스라고 해석할 수 있다.

백소싱을 하기로 결정한 명분은 그룹의 IT 보안을 강화하기위한 차원, 그리고 독자적인 대외수익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어렵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우선, 보안강화을 명분으로 내세운것은 실제로 지난해 5월 메리츠화재의 고객정보 유출사고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메리츠화재는 당시 16만건의 고객정보 유출사고로 인해 곤욕을 치렀고 대고객 사과문을 발표했다. 질병사망담보, 중상해교통사고처리지원금가입금액, 증권번호, 보험료, 고객명, 고객직업, 위험등급, 생년월일, 연락처, 주소 등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또 IT조직을 별도로 꾸려나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 메리츠화재, 메리츠증권의 차세대 프로젝트를 완료한 이후 남게된 300명에 달하는 인력이 많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다 금융회사가 IT아웃소싱 비중을 50% 이하로 가져갈 것을 요구하는 전자금융감독규정 개정안(2011년 개정)에 대응해야하는 것도 백소싱을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됐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IT아웃소싱을 바라보는 금융권의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보안사고 등 모든 문제를 IT아웃소싱 탓으로 돌리는 게 과도하긴하지만 또 한편으론 최근 금융권 IT실무 현장에선 IT아웃소싱에 대한 문제점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적지않게 들린다는 점은 주목할만한 변화다.

◆서서히 부각되는 IT아웃소싱 단점 ... 현장에선 “IT비용절감이 전부가 아니다” = 사안을 안좋은 시각으로 보기시작하면 단점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 마련이다. 요즘 IT아웃소싱이 그렇다.

한 시중은행의 IT기획팀 K팀장은 “IT아웃소싱이 비용적인 측면에선 분명히 강점이 있고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면 얘기의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IT서비스 그 이상의 역할을 그들에게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

‘그 이상의 역할’ 이란 표현에 많이 의미가 담겨있다. IT아웃소싱 파트너는 계약서상에 규정된 역할과 책임에는 충실하겠지만 은행 자체 직원에게 얻을 수 있는 유무형의 충성도와는 비교하기 힘들다는 것.

K팀장은 “업무를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하는 IT 현안들과 조우하게 되는데 내부 직원과 아웃소싱 파트너를 비교했을때 커뮤니케이션 속도, 그리고 결과치는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예를들면 협력업체들과는 여러번 미팅을 가져야만 내릴 수 있는 결론을, 내부 직원들과는 단 한 번의 미팅으로 끝낸다는 것. 내부 직원들은 필요에 따라 야근, 철야도 군말없이 할 수 있지만 협력업체라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이런 것은 결코 수치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금융 업무의 로직을 이해하고 IT업무에 적용하는 것도 역시 IT아웃소싱 업체 직원들과 자체 직원들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한다.

내부 직원들은 IT의 관점에서만 보지않고 은행원의 관념에서 사안을 풀어나가지만 IT아웃소싱 파트너에게 이것까지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주장이다.

IT아웃소싱의 단점을 지적하는 이같은 논리가 어느정도 타당한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과거 토털 IT아웃소싱을 추구했던 일부 은행들이 일정부분 IT아웃소싱 범위를 줄인것은 이러한 정서적 문제가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최근 금융 업무의 IT의존도가 높아갈수록 신속한 IT현안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부분에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IT비용을 너무 평면적으로 분석했기때문에 IT아웃소싱이 상대 우위로 평가받은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무작정 IT아웃소싱을 늘려가는 것이 혁신이 아니며 IT비용절감의 효과도 과장됐다’는 게 IT아웃소싱 회의론자들의 주장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최근 금융 IT아웃소싱을 냉정하게 보는 시각이 증가했다는 것은 ‘핵심업무를 위한 최소 인력만 남기고 비핵심업무는 모두 IT아웃소싱으로 전환시킨다’는 그동안의 금융 IT전략에 변화를 예고한다.

◆IT아웃소싱의 위축…“결과적으로 국내 IT업체들만 고통” 우려 = 한편 IT아웃소싱의 비중이 줄어들게되면 어찌됐건 그 간극은 내부 직원이 메워야한다. 금융회사의 전체 IT예산중 직원의 인건비 비중은 대략 30%~40% 정도를 차지한다. 총 IT예산에 인건비포함시키는 경우도 있고 제외시키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내부 인력 비중이 커지는 것은 가용 IT투자예산의 실질적인 축소로 이어진다.

특히 금융권의 실적이 좋지않은 상황에선 IT예산의 축소는 불가피하다. 실제로 지난해 전년동기대비 50%가까이 실적이 하락한 국내 4대 금융그룹 소속 은행들의 올해 IT예산은 지난해와 동결됐거나 10~20% 축소편성됐다.

그러나 금융권의 IT예산이 축소된다고해서 오라클, IBM, MS 등 매년 지급되는 고가의 외산 SW 유지보수료가 동시에 할인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한 시중은행이 올해 책정한 IT부문 SW 유지보수료 총액은 180억원으로 지난해의 170억원대보다 약간 늘었다. 사실상 이같은 고정비가 줄어들지 않은 상황이라면 인건비의 증가는 당연히 IT투자 여력의 감소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결국 협상력이 떨어지는 국내 IT업체들만 금융권 납품단가가 하향 조정되거나 유지보수료가 깍이는 등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바람직스럽지않은 나비효과인 셈이다.

IBM은 지난 2012년 아시아 태평양지역 국가에 소재한 주요 금융회사들의 IT투자패턴을 분석한 결과, 금융권의 IT투자 예산중 고정비 비중이 60%가 넘으면 IT인프라 구조가 노쇠화된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IT예산의 편성이 실제로 금융회사의 기존 IT인프라를 유지하기에도 벅찬 구조가 된다면 고객들에게 혁신적인 서비스가 제시될 가능성은 더욱 없어진다.

그동안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단점을 포함해 IT아웃소싱으로 파생될 수 있는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금융권이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박기록 기자>rock@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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