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질 권리, 개인정보보호인가 표현의자유 침해인가
[디지털데일리 심재석기자] 스페인에 사는 마리오 코스테하 곤살레스는 어느 날 구글에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빚 때문에 집을 경매에 내놨다는 내용의 오래전 기사가 검색된 것. 그는 신문사와 구글 측에 기사 및 링크 삭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고, 결국 그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미 빚을 갚았고 집도 되찾았는데 자신에 관한 기사를 구글에서 검색했을 때 여전히 과거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은 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보도 당시에는 분명히 합법적이고 정확한 보도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도 당시의 사실과 현재의 상태가 달라진 것이다.
최근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이 문제에 1차 답을 내렸다. ECJ는 곤살레스의 손을 들어뒀다. 소위 말하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구글스페인의 검색결과에서 곤살레스의 집 경매 기사는 검색되지 않게 됐다.
ECJ의 이같은 판결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인정하고 개인정보보호의 기준을 높인 의미있는 판결이라고 환영했고, 반대 측에서는 ‘알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는 판결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개인정보(명예)보호와 표현의 자유는 인터넷 상에서 가장 자주 충돌되는 가치 중 하나인데, 곤살레스 사건을 둘러싸고 또다시 큰 논쟁이 벌어질 분위기다.
이 가운데 개방형 인터넷을 지향하는 시민단체인 ‘오픈넷’은 지난 9일 저녁 서울 역삼동 디캠프에서 이번 판결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오픈넷은 표현의 자유의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단체다.
이날 토론회를 제안한 오픈넷 박경신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에는 진실적시 명예훼손이 있는데, 이번 판결도 이와 유사하다”면서 “모든 게시물에 대해 공익 없으면 지워져야 한다는 논리와 통한다”고 비판했다. 박 이사는 “(이번 판결이) 검색결과 배제라고는 하지만, 검색 결과에서 배제되는 것은 원 정보 삭제 못지않은 검열 효과를 가져온다”면서 “(표현의 자유) 위축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주제발표에 나선 가천대 최경진 교수는 “이번 판결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운을 뗐다. 최 교수는 “ECJ는 (이번 판결에서) 속칭 '잊혀질 권리'를 인정할 수는 있지만 명문화한 것은 아니다”면서 “(기존 판례에 있던) 정보의 삭제요구권, 거부권과 맥을 같이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잊혀질 권리는 절대적 권리와는 거리가 먼 개념이며, 제한된 범위에서 인정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 범위는 실체화를 통해 삭제 및 거부에 대응하는 권리와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특히 “이번 판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잊혀질 권리가 아니라 역외 적용의 첫 사례라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소송에서 구글은 스페인에서 이용하는 검색 서비스가 미국의 본사에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스페인 법의 영향력 안에 없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ECJ는 구글의 검색서비스는 광고를 팔기 위한 것이고, 광고판매는 구글스페인이 담당했기 때문에 EU의 정보보호기준에 따라야 한다고 판결했다. 최 교수는 “유럽의 법리가 역외(구글 미국본사)에도 적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판결”이라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이공의 양홍석 변호사 역시 이번 판결에 대해 “큰 의미 있는 판결은 아니다”면서 “마치 잊혀질 권리가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처럼 보도되고 있는데, 그런 기념비적인 판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양 변호사는 “그런 점에서 표현의 자유 제한을 불러일으킬만한 판결이라고 오해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합법 정보의 합리적 삭제 범위 설정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사회적 합의를 발견하고 구현해내는 역할을 사기업에 맡길 수 없기 때문에 사법부가 이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세종의 윤종수 변호사는 “합법적인 정보를 규제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에서만 가능하다”면서 “이번 판결로 구글과 같은 검색서비스 업체들이 개인정보보호법의 소관으로 들어와 개인정보처리자가 됐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개인정보보호법이라면 우리나라가 EU보다 훨씬 강한 삭제권을 부여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개인정보보호법은 광법위한 삭제권을 인정하고 있어 검색사업자를 개인정보처리자로 인정하고 한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고 설명했다.
최성진 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데, 잊혀질 권리가 과도하게 적용되면 법을 더 잘 알고 힘있는 사람들이 잘 활용하게 돼서 인터넷이 승자의 기록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최 국장은 “글 게시자와 글에 등장하는 개인의 충돌이 있을 때는 당사자간의 문제가 돼야 한다”면서 “삭제요청에 대해 검색 사업자가 판단한다면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보다는 문제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쉽게 지워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국장은 아울러 “이 문제는 기본권의 충돌”이라면서 “표현의 자유, 개인의 명예, 알권리 등의 문제는 사적인 주체인 기업이 아닌 공적 판단(사법부 등)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유럽의 정부나 언론 등이 구글에 대한 적대감이 크다”면서 “이번 판결도 이같은 분위기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재석 기자>sjs@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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