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ICT법 바로알기]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의 상속

김경환 변호사

[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 상속이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다.


상속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라 할 만큼 상속제도는 오랜 기간 존재해 왔으며 시대와 장소, 문화에 따라 변천돼 왔다.

그리고 상속이란 사망자의 유품을 누가 전수받는냐의 문제이므로, 유품의 내용이 변하면 상속의 내용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인터넷과 정보통신, 컴퓨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와 달리 사람들은 자기 소유가 아닌 포털, SNS, 블로그, 카페, 웹페이지 등에 자신의 생각·사진·글·이메일·동영상·개인정보·사생활 등에 관한 내용을 올리거나 저장하는 문화가 정착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포털 등에 생각 등을 올리거나 저장한 사람이 사망하게 되면, 그 상속인이 포털 등에 대해 사망한 사람의 생각·사진·글·이메일·동영상·개인정보·사생활 등에 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의 상속’ 문제이다.

디지털 유산의 문제는 미국의 이라크 참전 해병인 저스틴 마크 엘스워스 병장의 사망과 관련해 2004년 11월경 그의 부모가 이메일 계정 접근을 거절한 야후(yahoo)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지금의 미국 판례 추세와는 달리 이 소송에서 유족이 승소했고, 이에 따라 야후측은 유족에게 이메일 내용을 CD와 프린트물로 전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안함 침몰로 희생된 장병의 미니홈피 및 이메일에 대해 희생 장병의 유족이 미니홈피 및 이메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요청한 바 있으며, 드라마 ‘커피프린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뒤 2008년 8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탤런트 이언의 경우 유족이 아닌 제3자가 싸이월드 미니홈피 비밀번호 정보를 요청했다가 싸이월드로부터 거절당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존재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경우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 관리를 위탁받아 처리하는 회사로 ‘Entrustet’, ‘Legacy Locker’, ‘Vitallock’ 등이 영업 중이다. 그만큼 사회적 필요성이 커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민법 상속편에 유언사항이 법정돼 있으므로, 유언사항이 아닌 디지털 유품 관리에 대한 유언은 효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디지털 유품 처리에 대해, 현재로선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의 상속’에 관한 입법은 돼 있지 않기에 우리나라의 포털 등의 자율적인 기준에 의해 처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포털 등은 디지털 유품을 유족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존재하지 않고, 디지털 정보로서 존재하고 있는 디지털 유품에 대해 민법 상속편이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디지털 유품은 사망자만이 일신전속적으로 권리를 누리는 것이기에 양도 등이 적합하지 않고, 개인정보 등을 제3자에게 제공할 때에는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사망한 정보주체의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정보통신망법상의 비밀침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 제공을 꺼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털 등의 관행은 사망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거나 사망자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을 수 있고, 이용자들의 상식이나 법감정에 반할 수 있으며, 상속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

특히 이용자들이 제공하는 콘텐츠와 데이터·개인정보를 기초로 성장하고 있는 포털 등이 단순히 사무 편의만을 고려한 채 사망자의 디지털 유품 전체를 파기하거나 미니홈피를 폐쇄한다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또한 NHN, 다음커뮤니케이션, SK커뮤니케이션즈, KTH 등으로 구성된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는 2011년 12월에 펴낸 연구보고서에서, “민법적 해석론으로는 디지털 유산도 상속의 대상인 ‘재산’으로 보는 데에 큰 무리는 없으며, 디지털 유산을 상속인에게 제공하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상 비밀보호규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한 개인정보보호 의무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이므로 입법이 있기 이전이라도 디지털 유산의 처리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개인적으로도 포털 등의 접속 ID와 비밀번호는 그 자체가 권리라기보다는 개인에 대한 식별기호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고, 설사 권리로 보더라도 계약에 의해 형성된 채권적 권리인바 일신전속권의 범위에 해당하지 않고, 사망자의 게시물 역시 저작물성이 강한 경우에는 재산상 가치가 있다고 보아야 하기에 일신전속권으로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디지털 유품의 상속에 대해, 원칙적으로 긍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법령의 미비는 시간을 두고 보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다만 디지털 유품의 상속에 대해 포털 등의 자율규제에 맡길 것인지 아니면 법령으로 규율한 것인지에 대해는 많은 논의가 있다. 법령에서는 법체계상 문제되는 부분이나 기본적인 내용만 규율하고, 다양한 형태의 디지털 유품에 대한 구체적인 절차·수단·방법·비용부담 등은 자율규제를 원칙으로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입법 과정이나 자율적 약관 제정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이용자의 데이터 선택권과 정보 통제권, 자기결정권, 프라이버시권의 보장이라 할 수 있다. 순위를 둔다면, 상속인에게도 노출하기 싫은 사망자의 사생활이나 비밀에 대한 철저한 보호(프라이버시, 잊혀질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고, 고인을 기리는 상속인들의 의도(알권리, 추모할 권리, 상속권)를 후순위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들에 의해 디지털 유품의 상속을 긍정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지속적으로 제안되고 있으며, 언론 및 국민의 관심도 커져 가고 있다.

다른 IT 강국들도 디지털 유품의 처리 법안에 대해 시동을 걸고 있다. 사망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그리고 상속인들이 고인을 충분히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이 되길 바란다.

<법률사무소 민후 김경환 변호사>hi@minwho.kr
<법률사무소 민후>www.minwh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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