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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달과 손가락

윤상호

- 산업은행, 투기자본인가 국가경제 버팀목인가

[디지털데일리 윤상호기자]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 한다. 손가락만 보느라 달을 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불가의 일화다. 국내 속담도 비슷한 말이 있다.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못한다는 속담이다. 다 미시적인 것에 집착하다가 거시적인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말이다. 손가락과 나무도 중요하다. 하지만 손가락과 나무는 달과 숲으로 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도구다.

경제의 근간은 산업이다. 산업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금융이다. 우리 몸에 비유하면 뼈와 살은 제조업 등이 될 테고 금융은 그 안을 도는 피가 될 터이다. 뼈와 살의 강화 없이 피를 빨리 돌린다고 사람은 건강해지지 않는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 국내 경기 불황은 산업에 대한 고려 없이 금융 공학적 접근만 강화한 탓이 없지 않나 싶다. 금융의 잘못을 다른 곳에 떠넘기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돈이 돈을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지만 국내 산업 토대가 금융 중심으로 돌아갈 때 어떤 위기가 오는지 지금의 세계 경제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팬택은 국내 점유율 3위 휴대폰 제조사다. 지난 1분기까지 7분기 연속 적자다.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 중이다. 팬택 주채권은행은 산업은행이다. 팬택 채권단은 통신사 출자전환을 전제로 한 워크아웃을 의결했다. 통신사는 출자전환에 답을 주지 않았고 시한은 지났다. 현재 팬택은 금융권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어떤 절차도 밟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언제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다.

팬택의 경영위기는 전 세계적 휴대폰 업계 재편과 연관이 있다. 팬택은 지난 2년 해외에서 영향력을 급격히 잃었다. 결정타는 통신사와 정부가 날렸다. 통신사의 무리한 경쟁은 정부의 사업정지 제재를 불렀다. 통신사가 영업을 안 하니 휴대폰도 안 팔렸다. 통신사가 정부의 벌을 받았는데 팬택이 망했다. 팬택은 삼성전자처럼 다른 사업으로 메우기도 LG전자처럼 같은 그룹 통신사가 팔아주지도 않았다. 팬택 경영진의 잘못도 있다. 브랜드와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임에도 불구 제품에만 승부를 걸었다. 독자 브랜드도 고수했다.

팬택을 살려야하나 말아야하나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전체도 많은 말이 오가고 있다. 기회를 줘야한다는 쪽도 줄 필요가 없다는 쪽도 팬택이 아깝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국내 휴대폰 제조사가 삼성전자와 LG전자만 남는 것도 우려한다. 그러나 책임을 지는 것은 두려워한다. 걱정하는 사람은 많은데 나서고 싶은 사람은 없다.

금융이 총대를 매야할 때가 이런 때 아닐까. 누구도 달과 숲을 보지 못하고 손가락과 나무에만 연연할 때 국내 산업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시해주는 역할. 그게 국가 경제의 대동맥으로써 금융의 역할이고 산업은행의 역할이다. 인수합병(M&A)를 통해 투자한 돈을 회수하고 최대한 손해를 안 보려 하는 행동은 투기자본이나 하는 짓이다. 팬택과 협력업체는 7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직계가족만 따져도 30만여명이다.

<윤상호 기자>crow@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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