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해지는 자동차, 반도체 얹고 자율주행 정조준
첨단운전보조시스템(Advanced Driver Assistance Systems, ADAS)이 빠르게 보급되고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높아지면서 자동차 반도체 시장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 자동차에 반도체가 쓰인 것 자체는 오래됐지만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궁극적으로 자율주행차의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만큼 자동차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얘기다.
자동차에 적용되는 부품은 평균적으로 잡아도 2만개가 넘는다. 이 가운데 반도체가 쓰이는 전장부품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40% 수준이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전장부품이 비중이 불과 1%대에 불과했고 2000년대 들어서면서 10%대, 2010년을 넘어서면서부터 20%대를 넘어섰다는 점을 고려하면 확산속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자동차 반도체 시장은 규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배출가스 규제다. 예컨대 1970년 미국에서 발의된 머스키법만 하더라도 일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과 같은 배출가스를 1975년부터 90%로 줄여야 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와 같은 주요 미국 자동차 업체는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이런 친환경 엔진은 개발이 어렵다는 것. 이후 혼다가 1972년 들고 나온 시빅의 CVCC(Compound Vortex Controlled Combustion) 엔진이 머스키법을 통과하면서 배출가스 규제는 보다 탄력을 받게 된다.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기와 연료의 적절한 배합과 함께 완전연소가 이뤄져야 한다. 초기 CVCC 엔진은 카뷰레터를 이용했지만 1981년 나온 ER 버전에서는 전자식 제어가 이뤄지도록 했다. 기계로 공기와 연료를 섞던 것에서 반도체를 통해 보다 정밀한 제어가 가능하도록 한 셈이다. 여기에는 ECU(Electronic Control Unit)가 적지 않은 역할을 했으며 전자제어식 연료 분사를 통해 배출가스를 줄이면서도 효율은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 시기에는 상당수의 자동차가 ECU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8비트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이 적극적으로 활용됐다. MCU의 성능도 한층 높아져서 16비트, 지금은 32비트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분야도 넓어져서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 액티브 서스펜션, 안티록 브레이크 시스템(ABS), 레이더 기반의 ADAS를 포함하고 있다.
갈수록 강화되는 안전 규제도 자동차 반도체의 보급을 재촉했다. 에어백을 의무적으로 장착해야 하면서 탑재해야 하는 센서의 수가 늘어났으면 이와 동시에 데이터 처리를 위한 MCU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려됐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출고되는 모든 자동차에 타이어 공기압 경보 장치(Tire Pressure Monitoring System, TPMS) 장착이 의무화됐다. 각 바퀴에 센서를 장착해야 한다는 점에서 전장부품의 비중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필수는 아니지만 예방 차원의 안정성을 위해 장착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차선 이탈 경고 시스템(LDWS)도 마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전장부품 비중이 높은 하이브리드(HEV),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전기차(EV)도 마찬가지다.
업계 순위 뒤바뀔 듯, NXP 스포트라이트
자동차 반도체는 적용하는 곳에 따라 파워트레인, 바디, 섀시, 보안, 안전, 운전자 정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바디와 운전자 정보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글로벌 자동차 반도체 매출은 290억달러(약 34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엇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중국 경제 성장 둔화로 인해 자동차 생산량이 줄어든 탓과 유로화와 엔화의 약세로 미국 달러화로 매출을 전환했을 때 영향을 받은 것이 영향을 끼쳤다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다소 희비가 엇갈렸는데, 규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동차 반도체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차체제어모듈이나 변속기관리제어장치, 파워트레인은 전년 동기 대비 비슷한 규모가 유지됐다. 무열쇠시동, 실내온도조절, 헤드유닛, 에어백과 같은 기본적인 기능과 관련된 반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최대 -4%) 감소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반적인 자동차 판매량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끼쳤다고 봐야 한다.
반대로 충돌방지, 운전자 정보, 발광다이오드(LED)와 같은 기능이 성장을 이끌었다. 이런 기능에 사용되는 ECU의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2015년은 전년 동기 대비 ECU 관련 자동차 반도체 매출이 20% 이상 증가했다. 자동차에서 예방차원의 안전과 안락함이 필요한 분야가 인기를 끌었다고 보면 된다. 2016년 자동차 반도체 시장은 2015년보다 6% 성장한 310억달러(37조200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자동차 한 대에 사용되는 반도체 비용이 평균 340달러(약 40만원)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공급자별 점유율을 살피면 르네사스, NXP(프리스케일 포함), 인피니언이 자동차 MCU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다. 트랜지스터의 경우 인피니언, 미쓰비시, 로움,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르네사스가 전체 시장의 60% 이상이다. 뒤이어 페어차일드와 비쉐이, 온세미컨덕터 등이 따르는 형국이다. 2014년 자동차 반도체 시장규모는 289억8400만달러(약 3조4000억원)이었는데 업체별로는 르네사스가 30억32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 10.4%의 시장점유율로 업계 1위 자리를 지켰다.
2위 업체는 인피니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27억200만달러의 매출로 9.3%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ST마이크로(21억4400만달러, 7.4%), 프리스케일(20억9300만달러), NXP(18억6100만달러)가 르네사스와 인피니언의 뒤를 따랐다. 5위권 내에 든 업체 가운데 매출 성장률이 시장 평균(10%)를 상회한 곳은 인피니언(11.7%), 프리스케일(13.4%), NXP(13.5%)이었다. 2015년 이전까지 자동차 반도체 시장은 르네사스와 인피니언이 1위 자리를 놓고 다퉜다.
그러나 2015년은 변화가 컸다. NXP가 프리스케일을 18억달러(약 13조8000억원)를 들여 프리스케일을 인수합병(M&A) 하면서 단숨에 1위에 올랐다. 시가총액 400억달러의 거대 시스템반도체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연간 매출액은 10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각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자동차 반도체를 만드는 곳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국내에서도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오트론을 설립,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몇몇 MCU 개발을 제외하면 뚜렷한 수입대체 효과는 아직까지 보지 못하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는 사람의 생명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일반 소비자용 반도체가 0도부터 영상 40도까지 사용할 수 있고 수명이 1~5년 정도라면 자동차 반도체는 영하 40도~영상 155도를 버티며 수명은 15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는 일반적인 산업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따라서 이미 검증되어 있고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두고 자체 개발한 칩을 적용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산 자동차용 반도체가 개발됐다고는 하지만 안전이나 파워트레인, 안전, 바디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인포테인먼트나 운전자를 보조하기 위한 장치가 대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지금부터 제대로 시작한다고 해도 엔진과 안전에 적용되는 자동차용 반도체를 개발하려면 최소 20년은 걸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요컨대 한 번 들어가기는 힘들지만 진입만 하면 안정적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다.
ADAS와 운전자 정보 시장에 주목
IHS 조사 결과에서 나온 것처럼 현재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돋보이는 성장은 예방차원의 안전과 운전자 정보다. 풀어 말하면 ADAS와 인포테인먼트, 텔레매틱스라는 뜻이다. 다른 분야의 자동차 반도체는 진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보쉬, 콘티넨털, 덴소, 델파이 등 티어1 전장업체와의 긴밀한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와 달리 부품 형태로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다. 예컨대 VC사업본부를 운영하고 있는 LG전자는 2015년 임베디드(내장형 제어) 텔레매틱스 공급자 가운데 1위에 올랐다. 2위는 페이커, 3위는 콘티넨털, 4위는 하만, 5위는 마그네티 마렐리였다. 무엇보다 자율주행차 전망이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각종 자동차 반도체를 통합한 복합 센서 시장이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업체 욜디벨로프먼트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자동차에 탑재되는 센서는 29개 이상에 달할 것이며 관련한 전체 시장규모는 360억달러(약 42조원39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각 센서별로 살피면 서라운드 카메라 87억달러 (약 10조2442억원), 초음파 및 장거리 레이더(LRR) 79억달러(약 9조3022억원), 단거리 레이더(SRR) 120억달러(약 14조1300억원)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센서를 탑재한 자동차를 모두 자율주행차로 규정했을 때 2012년 시작된 1세대 제품은 초음파 4개, 서라운드 카메라 1개, LRR 1개의 센서를 제공했다. 내년부터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2세대는 초음파 8개, 서라운드 카메라 4개, LRR 1개, SRR 4개로 센서의 수가 2배 이상 늘어난다. 이때까지는 별도의 스티어링휠 조작은 불필요하지만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는 운전자가 판단해 눌러야 한다. 완전한 자율주행차는 아닌 셈이다.
2022년부터 시작되는 레벨3는 상황이 크게 바뀔 전망이다. 이전의 센서 숫자가 더 늘어나며 장거리용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와 함께 라이다(LIDAR·레이저 반사광을 이용해 물체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술) 및 추측항법(Dead Reck oning)이 추가된다. 이 시점에서는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는 물론 스티어링휠까지 자동차가 알아서 조작한다. 이후부터 전개되는 레벨4와 레벨5는 인공지능(AI)을 탑재, 운전자가 눈을 감고 있어도 운전할 수 있도록 해주며 사고의 판단까지 자동차가 결정하게 된다.완전한 자율주행차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각 센서별로 살피면 가장 핵심적으로 쓰이는 부품은 초음파와 레이저, 그리고 서라운드 카메라다. 현재 수준으로도 충분히 구현이 가능한 부품이나 여전히 개선해야 할 점이 만만치 않다. 카메라만 하더라도 울트라HD(UHD)로 해상도가 높아지고 2개 이상이 장착되면 촬영되는 데이터를 한꺼번에 처리하기가 여간 만만치 않다. 원활한 데이터 저장을 위해서는 마이크로SD카드로는 불가능하고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가 필요하다. IHS는 향후 ADAS 시장이 2015년 43억달러(약 5조1000억원)에서 오는 2020년까지 연평균 15%의 성장률을 나타내 86억달러(약 10조3100)로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수환 기자>shulee@insightsemic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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