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누구를 위한 UHD 방송인가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세계 최초 지상파 UHD 본방송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은 정부에 방송허가 신청서를 접수했고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내년 2월부터 한국 시청자들은 주파수를 이용한 지상파 UHD 방송을 직접 수신할 수 있게 된다. 700MHz 주파수를 이용한 세계 최초의 지상파 UHD 방송이다.

얼핏 ICT 강국에 이어 방송분야에서도 우리가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것 같지만 자칫 갈라파고스에 빠진 채 일부의 목적달성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방송기술의 발전속도를 감안할 때 현재의 디지털방송이 UHD로 진화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그 시장을 우리가 선도하겠다는데 당연히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도입 논의부터 정책결정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허가신청이 이뤄졌는데 벌써부터 졸속추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언론노동조합은 “정부는 졸속적으로 일방적으로 추진 중인 UHD 방송 전환 계획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미식 기술표준이 적용된 UHDTV는 내년에나 시판될 예정이고 아직 유료방송사들은 지상파 UHD 재송신 계획이 없어 보인다. 내년 2월에 본방송을 시작해도 실제 UHDTV로 지상파 방송을 직접 시청할 가구는 거의 없다는 얘기다.

언론노조의 우려는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의 열의와 달리 UHD 직접수신을 위한 시청자들의 인프라 준비, 즉 UHDTV 구매는 여전히 미흡하다. 그도 그럴 것이 디지털방송 시대지만 700만 가량의 가구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송을 시청중이다. 완전한 HD 방송 전환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에서 UHD 전환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TV는 휴대폰처럼 2년도 되지 않아 바꾸는 IT 기기가 아니다.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지만 지나치게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다양한 우려가 제기되자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 활성화를 위해 직접수신 안테나 내장을 제조사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제조사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막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이미 UHDTV를 구매한 시청자가 내년 지상파 방송을 직접수신하려면 셋톱박스를 달아야 하지만 비용문제에 대한 논의 역시 진전이 없다.

가장 먼저 시작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의 호언처럼 우리가 세계 고화질 방송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먼저 한다고 해외 방송플랫폼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은 콘텐츠가 경쟁력인데 직접수신 여부에 따라 콘텐츠의 품질, 경쟁력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지상파 직접수신율은 6~7% 수준. 전문가들은 지상파 UHD 방송이 시작돼도 직접수신 가구가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아날로그 방송시절 케이블 방송 가입 목적은 지상파 방송을 깨끗하게 시청하기 위함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더 이상 지상파는 콘텐츠 시장에서의 절대 강자가 아니다. 종합편성 채널을 비롯해 보도기능만 갖추면 지상파 못지않은 CJ도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 유료방송 수신료는 세계 최저 수준이다. 월 1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비싸고(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많이 내려가겠지만) 대형 화면의 UHDTV를 구매하고 지상파만 시청할 가구가 얼마나 될까. 이미 유료방송도 유무선 통신상품과 결합해 판매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디지털전환으로 인한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우리처럼 주파수를 통해 UHD 방송을 송신한다는 계획을 세운 곳은 찾기 어렵다. 지금은 온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시청하는 시대도 아니다. N스크린 시대 전통적인 시청률 조사는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아마도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방송을 통해 플랫폼 사업자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플랫폼 지위를 통해 케이블, IPTV, 위성 등 유료방송 사업자에 대한 콘텐츠 협상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방송정책의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시청자 편익을 꼽고 있다. 저소득층 일부 시청계층에 대한 무료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지상파 방송의 가치는 UHD 시대에도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주파수 공급이 아닌 정부와 플랫폼 사업자의 노력으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지금 추진되는 지상파 UHD 방송은 오롯이 시청자를 위한 것일까?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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