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 글로벌 IT기업의 오픈소스 SW 전략…⑥HP(HP+HPE)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휴렛패커드(HP)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안착한 벤처 기업의 시조로 꼽힌다. 비록 76년만에 두 개 회사로 쪼개지긴 했지만 그동안 HP가 IT 역사에 남긴 교훈은 많다.
1939년 스탠포드 대학 전기공학부 졸업생인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는 세계 경제 대공황에 자신들의 스승인 프레데릭 터먼 교수의 지원으로 정밀 음향 발진기 개발에 성공하며 HP라는 1세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탄생시켰다.
이것이 미국 캘리포니아 팔로알토의 차고에서 시작한 HP의 역사다. 당시 시가보다 저렴하게 납품됐던 이들의 개발품을 월트디즈니사에서 대량 구입하며 우위를 점하게 됐고, 이를 33년 동안 이어오며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팔린 기초전자 모델이 됐다.
HP는 194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여러 분야의 제품을 선보였다. 점차 컴퓨터, 주변기기, 광학기 분야로 확대하며 마침내 소프트웨어(SW), 하드웨어(HW) 부문까지 영역을 넓혔다. 그리고 2002년 컴팩과 합병하며 세계 최대 PC 회사로 등극했다.
하지만 글로벌 IT의 공룡으로 거듭난 이후의 행보는 아쉬움을 준다. 2010년 웹OS와 웹OS 기반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팜’을 12억 달러에 인수했지만 사업 부진으로 중단을 선언했으며 2011년에는 PC 사업 철수 의향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이를 다시 번복하더니 결국 창립 76년만에 엔터프라이즈 사업과 PC·프린터 사업을 분리하는 중대 결정을 내렸다. 집중과 효율이라는 명분이었다.
HP는 2015 회계년도가 시작된 지난해 11월, 서버와 네트워크 등이 포함된 기업사업을 담당할 ‘휴렛패커드엔터프라이즈(HPE)’와 PC와 프린터 사업을 담당할 ‘HP Inc’, 두 개 회사로 분리해 새롭게 출범한다. 분사된 회사 역시 사업 재편을 지속하고 있다.
HP Inc는 분사한 삼성전자의 프린팅솔루션사업부를 흡수했으며, HPE도 컨설팅 및 IT서비스(SI)를 담당하던 엔터프라이즈 서비스 사업부와 빅데이터, 보안 등의 솔루션이 포함된 SW사업부, 오픈스택 관련 자산 및 인력 등을 떼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서버, 네트워크와 같은 핵심제품 역량에 힘을 쏟는 한편, 필요한 사업 영역은 파트너사와 협력할 방침이다.
HP도 그동안 자사 솔루션이나 서비스를 오픈소스로 다수 공개해 왔다(이번 회에서는 HP와 HPE를 구별하지 않고 HP로 지칭할 예정이다). 2011년 HP는 자사의 ‘웹OS’ 운영체제(OS)를 확산시키기 위해 오픈소스화(오픈 웹OS)했다. 또 웹 기반의 애플리케이션 개발 프레임워크인 ‘엔요(Enyo)’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 다음 해에는 ‘오픈 웹OS’용 웹브라우저 ‘이시스(Isis)’와 ‘큐트웹킷(QtWebKit)’을 아파치 라이선스 2.0으로 공개했다. 이시스와 큐트웹킷 모두 웹OS 엔요 프레임워크 기반으로 자바스크립트 코어를 사용한다.
큐트웹킷은 엔요 및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강력하고 빠른 속도의 표준 환경을 지원해 웹OS의 웹 렌더링 레이어와 기본 시스템관리 기능 통합을 지원한다. 하지만 2013년 2월 HP는 LG전자에 웹OS를 매각한다. 이후 2014년 1월에는 1400개의 스마트폰 특허도 팔았다.
2014년에는 오픈스택을 기반으로 한 ‘힐리온(Helion)’을 만들었다. HP는 오픈스택 재단의 가장 큰 공헌자이기도 했다. HP 힐리온은 기존 HP 제품에 오픈스택을 통합해 퍼블릭과 프라이빗,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서비스 등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오픈스택 기반의 퍼블릭 클라우드는 올해 1월 31일부로 종료됐으며, 힐리온 관련 연구개발(R&D) 인력 등은 ‘수세’로 넘겼다. 하지만 ‘힐리온’ 브랜드는 계속해서 보유하며, 프라이빗 및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이전에도 HP는 오픈소스를 자사 솔루션 및 서비스에 적용하며 생태계를 넓혀왔다. 2004년 HP는 자사의 x86 서버인 프로라이언트에서 스팸을 차단하는 오픈소스 이메일 솔루션인 ‘샌드박스’를 판매했다. 오픈소스 샌드박스 SW는 인터넷을 통해 한 컴퓨터에서 다른 컴퓨터로 메일을 전송하는데 사용됐다. 업계에선 이를 오랜 기간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우방이었던 HP가 오픈소스 업체들과 협력하게 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2007년에는 MIT 디스페이스(DSpace)의 오픈소스 아카이브를 지원했다. 디스페이스 재단은 오픈소스 온라인 툴을 이용해 디지털 문서 아카이브를 관리하는 전세계 200여개의 기관에 지원을 제공했다. 디스페이스는 연구 기관이 조성하는 막대한 양의 지적재산권(IP)을 위한 통합 전자 저장소다. 저장소의 핵심은 오픈소스 저장 및 검색 시스템이었다.
2011년, HP는 자사 클라우드에 ‘우분투’ 리눅스를 투입했다. HP는 올 1월 말 종료된 HP 퍼블릭 클라우드의 운영체제(OS)로 우분투 리눅스를 선정했다. 우분투의 제작사인 캐노니컬은 우분투가 오픈스택 IaaS에서 핵심요소로 각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5년엔 오픈스택 기반 클라우드 솔루션 브랜드인 HP 힐리온에 인수 후 처음으로 업그레이드 된 유칼립투스 새 버전을 공개했다. 유칼립투스는 2014년 HP가 인수한 오픈소스 기반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업체다. 유칼립투스 SW는 아마존웹서비스(AWS)와의 호환성을 토대로 프라이빗 및 하이브리드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을 구축하도록 디자인돼 있다. 지난해 공개된 HP 힐리온 유칼립투스4.1은 HP 힐리온 프라이빗 클라우드와 AWS 퍼블릭 클라우드 서비스를 엮는 2가지 도구로 구성됐다.
오픈소스 커뮤니티에도 협력 및 기여활동을 펼쳐왔다. 오픈스택 이외에도 하둡 배포업체인 호튼웍스에 지난 2014년 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양사는 전략적 제휴를 맺고 HP 데이터 프로세싱 플랫폼 헤븐(HAVEn)에 호튼웍스의 하둡 배포판을 결합하기 위한 아키텍처를 만든다. 이후 지난 3월에는 데이터 분석을 위한 아파치 스파크 프로젝트의 기술개발 활동에 협력하고 있다.
올 1월에는 구글, 오라클과 함께 ‘리스크-파이브(RISC-V)’도 합류했다. ‘리스크-V’는 오픈소스 칩을 개발하는 프로세서 그룹이면서 오픈소스 컴퓨터 프로세서 아키텍처, 또는 그 명령어 셋(ISA) 규격의 명칭을 지칭한다. 이는 2010년 미국 UC버클리 컴퓨터과학부 연구자들의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BSD 라이선스 기반으로 제공되는 리스크-V ISA 규격을 활용한 칩과 SW를 설계하고 제작할 수 있다.
3월에는 ARM과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시스템 구축을 위해 협력키로 했다. 호환되지 않는 다양한 산업별 표준, 독점적인 표준을 따르는 기기들로 인해 스마트 디바이스 간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로 인해 기기 간의 정보 공유가 불가능해지며 IoT 네트워크 역량은 제한된다.
양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 통제방식으로 기기를 식별하고 접근 및 관리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 HPE는 ARM의 mbed IoT 디바이스 플랫폼 연결 솔루션을 사용하며, 이는 HW와 SW를 통합하고 운용 배치를 관리하며 기기의 정보 분석을 원활하게 한다.
오픈소스 지원 확대를 위한 HP의 인수합병(M&A) 노력도 있었다. 다만 HP의 M&A 역사가 마냥 아름답지는(?) 않다. 실패로 끝난 인수도 많았다.
HP는 2008년 139억달러(약 15조원)를 들여 인수한 ‘EDS(Electronic Data Systems)’를 통해 데이터센터 및 아웃소싱 역량을 확보했지만, 결국 EDS가 근간이었던 엔터프라이즈 서비스 조직을 분리해 CSC와 합병작업을 진행 중이다.
2010년 12억달러에 인수한 스마트폰 제조업체 ‘팜’도 마찬가지다. 팜은 스마트폰 ‘팜 프리’를 생산하고 그를 위한 스마트폰 OS ‘웹OS’도 직접 생각해낸 업체다. 팜 인수를 통해 HP는 유닉스 서버용 OS인 ‘HP-UX’ 이외에 또 하나의 OS를 확보했다. 생태계 확장을 위해 오픈소스로 공개했지만 그리 효과적이지 않았던 듯 보인다. 이후 2013년 LG전자가 스마트TV에 적용하기 위해 HP의 웹OS 일부 특허를 인수하는 결과로 귀결됐다.
스토리지와 빅데이터 등의 영역 확장을 위해 ‘3PAR’와 ‘버티카시스템즈’, ‘오토노미’를 연이어 인수한다. 2010년 인수한 3PAR의 경우, 델과의 치열한 인수전을 벌이며 가까스로 품에 안았다. 스토리지 용량 활용도를 높여주는 씬프로비저닝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던 3PAR는 HP의 메인 스토리지 제품군으로 포지셔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2011년 인수한 DW 및 실시간 분석플랫폼인 버티카와 영국검색엔진SW기업인 오토노미는 끝이 좋지 않았다. 그루폰, 트위터, 버라이즌 등 300여 기업고객을 보유했던 버티카는 최근 HP(HPE)의 SW사업부 매각에 따라 영국 마이크로포커스에 안겼다. 또 무려 110억달러에 인수한 오토노미는 회계부정에 88억달러의 손해를 보며 감각상각 처리됐다. 당시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던 HP는 이로 인해 큰 타격을 입었다. 오토노미 역시 SW사업부 소속으로 마이크로포커스로 인수된다. 다만 마이크로포커스는 이번에 인수한 SW사업부를 HP(HPE)와 합작 설립하는 신설 법인을 통해 새롭게 출범시킬 예정이다.
지난해 인수한 ‘아루바네트웍스’와 ‘콘테익스트림(ConteXtream)’은 HP의 주력 제품으로 포지셔닝하고 있다. 이중 콘테익스트림은 소프트웨어정의네트워킹(SDN)과 네트워크기능가상화(NFV) 분야 스타트업이다.
오픈소스 SDN 프레임워크를 만드는 오픈데이라이트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통신사들이 기존 서버를 가상화해 회선가입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 5월 인수한 ‘라사네트웍스(RASA Networks)도 네트워크 성능 관리 및 분석 기업이다. 라사의 분석 및 관리기술은 아루바가 통일된 유선 및 무선 클라우드 관리 프레임워크를 구축할 수 있다.
이밖에 HP가 진행하는 오픈소스 관련 활동들도 다수 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HP 직원들의 진행으로 이뤄지는 코딩 대회 ‘HP 코드워 실리콘밸리(CodeWars Silicon Valley)’는 매년 열린다. 고등학생부터 개인, 기업 모두 참여 가능하며, 지난 2015년에 진행된 대회에서는 19개 학교에서 57개팀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2015년 10월부터는 오픈소스 리눅스 기반 네트워킹 OS인 ‘오픈스위치(OpenSwitch) 커뮤니티’도 주도하고 있다. HP를 포함해 브로드컴, 인텔, VM웨어 등과 커뮤니티 설립을 주도했으며, 이는 지난 3월 리눅스 재단의 협력 프로젝트로 선정됐다. HP의 연구로 실현되는 여러 기술 및 오픈소스SW를 다운받을 수 있는 저장소 ‘HP랩스(HP Labs)’도 운영하고 있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 본 ‘글로벌 IT기업의 오픈소스 SW 전략’은 디지털데일리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공개SW역량프라자(http://www.oss.kr)가 공동 기획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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