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선생님’이 한국IBM 첫 여성 CTO가 되기까지
[우먼 인 테크(Woman in Tech) ①] 엄경순 한국IBM 최고기술책임자(CTO, 전무)
-한국IBM 최초 여성 CTO 엄경순 전무, “올해 후배 엔지니어 양성에 매진”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국내 금융, 제조 등 각 산업군의 정보기술(IT) 담당 임원들 중에 엄경순 한국IBM 전무(51)<사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올해 초 한국IBM 역사상 최초로 여성 최고기술책임자(CTO)가 된 엄 전무는 한때 한국IBM 교육센터(Learing Center)에서 고객들을 대상으로 DB2(IBM의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 강사로 일했기 때문이다.
당시 엄 전무에게 교육을 받은 많은 엔지니어들이 어느덧 각 기업의 최고정보책임자(CIO) 등 핵심 임원으로 성장한 것이다. 1990년 한국IBM에 입사해 첫 근무를 전산실(IBM 컴퓨팅 센터)에서 시작한 엄 전무가 DB2 강사가 된 것은 육아때문이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비교적 규칙적인 업무가 가능한 곳을 찾아야 했는데 그곳이 이 교육센터였다. 교육센터 강사를 1995년부터 2001년까지 약 7년 간 맡았다. 아이는 둘로 늘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고 난 2002년부터 비로소 소프트웨어그룹(SWG)으로 자리를 옮겨 다양한 업무를 담당했다.
엄 전무는 “전산실 특성상 늦은 밤이나 새벽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교육센터는 9시부터 6시까지 강의 시간이 일정했다”며 “IBM 교육센터에서 두 아이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맡았던 DB2 강의는 교육센터에서도 가장 있기 있는 과목이었다. 출산 전날까지 강의를 했다.
전산실에서 다양한 기술적 지식을 쌓았다면, 교육센터에선 고객들에게 기술을 쉽게 설명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이는 현재 전담하고 있는 삼성전자 기술자문(CTA) 역할 및 전체 기술팀을 리딩하는 CTO 직책을 수행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엄 전무는 대학에서 통계학을 전공했다. 통계학과 특성상 컴퓨터 과학 과목이 절반 이상이었다. ‘IBM’은 책에 늘 등장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실제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전자와 한국IBM 두 곳의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고민 없이 IBM을 선택했다. 올해로 입사 27년차가 됐다. ‘기술자’로써는 최고의 자리인 CTO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됐다.
그는 “사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정년퇴직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IBM에서 즐겁고 멋지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단지 순수한 ‘파란 피(파란색은 IBM의 고유색깔)’의 아이비에머(IBMer)로 사는 것이 꿈이었다”며 웃었다.
시간이 흘러 승진을 하고 고객에게 인정받고 회사 내 임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그의 꿈은 ‘CTO’로 바뀌었다. 목표를 갖고 일을 하다 보니 좀 더 열정적으로 하게 됐다. 기회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주어진다는 확신도 갖게 됐다.
물론 그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여느 기혼 여성과 마찬가지로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일명 '이모님')와 친정엄마, 남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공무원인 남편은 재택근무를 하면서까지 그녀를 도왔다.
그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회사에서 한창 열심히 일을 배울 시기여서 주변의 도움이 많이 필요했고, 학습과 관련해 엄마의 손이 많이 필요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들어가선 회사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 Life Balance)’를 위한 시간 배분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퇴사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간혹 아이가 감기 때문에 열이 펄펄 끓는데 아이를 돌봐주는 시터가 못오고 회사는 꼭 출근해야 할 때가 특히 그랬다. IBM이 외국계 기업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인 것은 확실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했을때는 약해질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엄마가 자랑스럽다'고 했다는 얘기를 전해들었을 때,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받았다고 생각했다.
엄 전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으면 여성이 일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라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마냥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되지만, 오히려 커서는 직장 다니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자립심도 강해진다”고 조언했다. 또 20년 넘게 IBM을 다니면서 집안 곳곳에는 IBM 로고가 생긴 물건들이 많아지고, IBM에서 주최하는 가족 나들이 등에 참석하면서 아이들도 IBM을 자연스럽게 좋은 회사라고 느끼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가 IT업계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복잡하지 않았다. 선배 여성들을 주기적으로 만나 커리어 계획이나 육아 문제 등에 대해 멘토링을 받고,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다.
그 역시 한국 여성 임원들의 모임인 ‘WIN(Women In Innovation)’ 멤버로 활동하며 후배 여성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다. 또 꾸준히 좋아하는 일을 찾아 투자를 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회사생활을 즐길 것을 강조했다. 체력 관리는 필수다.
엄 전무는 “특히 IT분야의 경우 트렌드가 최근 인공지능(AI)이나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패러다임으로 바뀌면서 여성의 유연함과 공감능력 등이 잘 발휘되는 측면이 많다”며 “신기술 수용이나 다양한 산업간 융합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협업 등에서 여성의 장점이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IBM의 인공지능(코그너티브 컴퓨팅)이 유통분야에 적용될 경우, 소자가 원하는 것을 추천해 주는 식의 사례는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큰 여성의 능력이 더 필요한 분야다.
현재 엄 전무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기술은 ‘블록체인’이다. 외화송금 업무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면 사용자는 기존 수수료의 70~80%를 절감할 수 있으며 투명하고 안전한 거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금융 이외에도 유통, 물류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최근 IBM이 중국 월마트와 칭화대와 구축한 돼지고기 식품 인증 및 기론보존 프로젝트인 ‘디지털 식품망’의 경우,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사용자가 안심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그는 “IBM이 내놓는 기술방향은 대부분 IT업계의 트렌드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왓슨과 같은 인공지능은 물론이고 블록체인 같은 기술은 세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CTO로써의 그의 목표는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후배 엔지니어들이 시장이 원하는 기술 역량을 길러 인정받는 기술자가 되고, 더 나아가 IBM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한편, 디지털 시대에 맞게 온·오프라인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해 인정받는 IT전문가가 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IBM이 운영하는 ‘디벨로퍼스 워크(DeveloperWorks)’와 같은 사이트도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엄 전무는 “그동안 선배나 회사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온 만큼, 이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선배 역할을 하고 싶다”며 “개인적으로도 기술임원으로서 경험을 펼칠 수 있는 또 다른 목표를 찾는데 시간을 쏟을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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