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웅 칼럼

[취재수첩] 배고프다고 씨앗까지 먹어서야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이동통신 기본료 폐지 공약이 등장했다. 지지율 1~2위를 엎치락뒤치락 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대 통신비 인하 공약을 공개했다.

8개나 되는 공약이 담겨있지만 핵심이자, 가장 많은 관심을 끌고 있는 약속은 기본료 폐지다.

지금까지 많은 정당, 정치인, 시민단체 등에서 기본료 폐지를 주장하기도 했지만 여러 이유로 현실화되지 못한 기본료 폐지가 유력 대선 후보 공약에 포함된 것이다. 이동통신 가입자를 6000만으로 놓고 계산하면 연간 약 8조원이다. 그 어떤 대선 후보나 역대 대통령이 시행한 통신비 인하 정책보다 확실히 요금 인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듯싶다.

문제는 실효성, 그리고 파급효과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서비스 요금은 내려갈수록 좋다. 하지만 무조건 싸다고 능사는 아니다. 그 서비스의 지속적인 발전과 전체 산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득과 실을 계산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한 측면서 기본료 폐지 주장은 이용자 측면에서 달콤하기는 하지만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 후보의 기본료 폐지 대상은 1만1000원을 실제 내고 있는 표준요금제 대상 뿐 아니라 스마트폰 정액요금제 이용자들도 모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산술적으로 연간 8조원이다. 이동통신사 입장에서는 이익 8조원이 사라진다는 얘기다. 지난해 이통사의 영업이익 3.6조원의 2배 이상이다. 적자 전환은 불가피하다.

물론, 이통사가 어떤 곳인가. 가만히 앉아서 막대한 손실을 볼리 없다. 요금인상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전방위적인 비용통제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7~8조원의 마케팅 비용을 쓰지 않으면 된다. 여기에 5조원 남짓한 설비투자(CAPEX)비도 있다.

이처럼 마케팅비, 투자비를 줄이면 문제가 해결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타나는 결과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마케팅 비용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문 후보가 제시한 저렴한 휴대폰 구매를 위한 지원금, 휴대폰 가입자 유치에 생계를 걸고 있는 수많은 유통점들이 이통사의 판매장려금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휴대폰 지원금이 사라지게 되면 그와 연동해 시행되고 있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20%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고가의 단말기 판매는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유통점의 줄폐업도 과장이 아닐 수 있다. 저렴한 음성 요금제를 바탕으로 한 알뜰폰 업체들 역시 상당수는 문을 닫을 위기에 놓일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나가보면 경험하게 된다. 느려서, 안터져서 속터지는 것을. 국내 통신사들의 설비, 네트워크 경쟁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그 같은 설비 경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서 다양한 인터넷 서비스들이 등장하고 빠른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었다.

마케팅비와 투자비가 줄어들면 도미노처럼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이런 전후 사정 때문에 정부도 요금인하 정책에 골몰하면서도 기본료 폐지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결국, 기본료를 일거에 없애자는 얘기는 배고프다고 종자로 쓸 볍씨까지 먹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저렴한 요금으로 높은 품질의 서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정부가 사업자 손목을 비틀어 요금을 내리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 후보의 통신비 인하 정책 중 가장 아쉬운 점은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 방안은 제외됐다는 점이다. 기본료를 없애고 한중일 로밍요금도 무료로 하고, 와이파이존도 확대하고, 지원금 상한제를 폐지하고, 각 이통사가 내세운 차별화 포인트를 일률적으로 다 같이 하는 등 하나같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효과가 나는 것 들 뿐이다.

소비자 이익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정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산업에 대한 고려는 찾기 어렵다. 다분히 표를 의식한 표퓰리즘으로 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안철수 후보와의 접전이 문 캠프의 다급함으로 표현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통신요금 인하 해법은 간단하다. 경쟁이 활성화 되면 요금은 내려가고 서비스 품질은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본료 폐지가 다시 언급된 것이다.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될지 안될 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만약 당선된다면 기본료 폐지처럼 표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소비자와 산업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경쟁정책을 펴주었으면 한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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