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삼성SDS가 지난 2013년 공공·금융 시스템통합(SI) 시장에서 공식 철수한 이후 이 시장에선 긴장감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 시장을 취재하는 기자 입장에선 솔직히 ‘재미’가 없어졌다.
예전에는 삼성SDS, LG CNS, SK(주)C&C가 서로 견제하며 시장을 만들어왔는데 공공분야는 대기업 사업 참여 제한으로 의미가 없어졌고 금융시장은 시장의 한 축이 사라진 이후 만들어진 양 강 구도의 긴장감이 떨어진 탓이다.
다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공공시장의 경우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 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 등을 의미하는 ‘ICBM’을 대상으로 하는 신사업 중 중소중견 업체와 대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대기업의 참여 제한 족쇄가 풀렸다.
마찬가지로 금융시장에서도 클라우드, 빅데이터,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새로운 IT기술을 바탕으로 금융 인프라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공, 금융 모두 이전의 IT인프라로는 대응할 수 없는 경쟁 환경이 마련되고 있다.
삼성SDS는 최근 블록체인, 빅데이터, 클라우드 등 IT신기술을 활용한 플랫폼과 솔루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신기술을 기반으로 유력 SW벤더로서의 기반을 닦겠다는 각오다.
물론 해외 진출 등을 위해선 ‘국내 사례’가 확보돼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국내에서 발주되고 있는 금융, 공공시장의 ICBM류의 사업은 관심이 대상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시장은 삼성SDS의 희망대로 흘러가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은행연합회가 주도해 추진 중인 ‘은행권 블록체인(blockchain) 시스템 구축사업’이 사례다.
은행연합회는 시스템 구축의 세부요건은 참여 사업자가 제안하도록 했다. 사실상 SI(시스템통합)사업으로 발주하는 기존 관행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SI가 아닌 솔루션과 플랫폼으로만 접근하고자 하는 삼성SDS로선 부담일 수 밖에 없다.
삼성SDS는 최근 우체국금융 차세대사업의 정보화전략계획(ISP) 사업자로도 선정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우체국금융 차세대 사업을 클라우드·빅데이터 기반으로 구축할 계획이다.
삼성SDS는 우체국금융의 최신 IT기술 기반의 시스템 구축을 설계하게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ISP가 끝나면 우체국금융은 본 사업을 위한 SI사업자를 선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우체국금융이 만약 클라우드,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에 대해 분리발주를 하고, SI사업자는 별도로 선정하게된다면 삼성SDS는 분리발주에 기대를 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우체국금융이 분리발주없이 SI사업자에서 관련 SW를 소싱해서 턴키로 SI계약을 맺어버리면 삼성SDS로서는 본사업에 참여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ISP만 수행하고 손을 떼는 것이다.
현재 추진 중인 국민연금공단의 주거래은행 선정 사업에서도 삼성SDS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주거래은행과 국민연금공단의 연계 시스템 및 국민연금공단의 주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사업인 만큼 SI사업자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 사업과 관련, 삼성SDS는 "인프라 차원에서의 접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 결과적으로 최근 ICBM 및 신규 인프라 구축 사업을 통해 구축사례를 확보하려는 삼성SDS와, SI사업자를 원하는 발주자의 의도가 서로 맞지 않는 분위기다.
물론 삼성SDS는 SI사업에 대한 재진출(?) 가능성 여부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삼성SDS는 ‘단순’ 금융・공공 SI사업은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난 수년간 일관된 공식 입장이다. 실제로도 삼성SDS는 예전처럼 금융 SI를 전담할 SI조직 자체가 없다. 다만 삼성SDS는 4차 산업분야인 ICBM과 AI 등 신기술 활용 사업은 SW사업측면에서 적극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시장의 생각은 다르다. ‘단순’한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이는 국내에서 SW시장이 발전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플랫폼과 SW에 틀을 맞추기 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의 틀에 맞추기를 원한다.
수년전, 국내 SI시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먼저 공공, 금융 SI시장에서 철수해버린 삼성SDS.
이제는 SI사업자가 아닌 SW사업자의 모습으로 변신해 나타난 삼성SDS를 시장은 아직도 낯설어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한 발짝 더 떨어져서 본다면, 이런 낯설음도 그래 오래 갈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