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난데없는 불똥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최근 일련의 상황을 보면 분명 사이버안보를 강화해야 하는 시기다.

불안정한 동북아 국제정세 속에서 북핵 위협까지 가중되고 있다. 워너크라이 등 랜섬웨어가 대두되는가 하면 북한과 미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사이버전쟁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상황은 이렇지만, 이를 뒷받침해주는 예산과 인력은 녹록지 않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정보보안 예산은 약 3508억원으로 전체 정부 예산의 0.088%에 불과하다.

미국이 190억달러(한화 약 21조원), 영국이 19억유로(한화 약 2조3000억원)로, 각각 전체 국가예산의 0.45%, 0.25%를 차지하는 것과 비교해도 확연한 격차다.

인력도 부족하다.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최정예 사이버보안 전문인력 7000명을 양성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린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7000명에 가까운 해커들이 업무처럼 해킹을 시도하고 있다. 실제 경찰 수사 결과, 이들 해커들은 이른 아침에 뉴스 스크랩을 시작으로 365일 24시간 시스템을 해킹하고 경유지를 확보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정부도 사이버보안 인력 확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이에 정보보호 특성화대학교, 정보보호 석사과정 지원, 전문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사이버보안인재센터를 내달 개소할 예정이다.

하지만 생태계 악순환이 반복되는 현 국내 정보보안 산업 실태는 우수 인재를 끌어오기 어려운 구조다. 1년 내내 울리는 사이버위기 경보, 매일이 되어버린 비상대기 상황, 밤낮 없이 일할 수밖에 없는 과도한 업무, 상대적인 저임금 등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정보보안 인재를 꿈꾸는 학생들의 자존감이 어른들의 정치공작에 훼손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최근 MB정권 당시의 댓글 공작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와 국방부 간 의혹이 제기되면서부터다. 국정감사가 시작된 후 불씨는 더욱 커졌다.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이 입고 있다.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 전원이 군 사이버사 소속 요원으로 임명됐다. 군 사이버사령부 핵심 요원 일부가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석박사 과정을 이수하는 혜택을 받았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들로 국방과학연구소(ADD)에 불필요한 조직을 만들고 수십억원의 예산을 몰아줬다.”

그러나 고려대에 따르면, 현재 사이버국방학과는 1·2기가 졸업한 상태로, 단 한명도 사이버사령부에 배치되지 않았으며, 사이버기술 연구개발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 정부와 대학이 협력해 고용계약형 및 재교육형 학과를 운영하는 사례는 흔하다.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들이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게 된 이유는 한국형 탈피오트를 만들자고 정부에서 내놓은 방책이었다.

이스라엘의 엘리트 과학기술 전문장교 프로그램인 ‘탈피오트’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한국은 이를 통해 각 대학에서 과학기술을 연구한 우수 인재들을 영입했다.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현 과기정통부)와 국방부는 이공계 인재·최정예 정보보호 전문인력 양성 등을 목표로 한 만큼, 사이버 전문인력의 경우 고려대 사이버국방학과 졸업생을 채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로 인해, 우수 인재들이 졸지에 특혜만 받는 이들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물론 국방부의 댓글공작을 비롯해 부조리한 면면을 조사하고 그에 맡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실제 문제가 된 부분이 있다면 수면 위로 올려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난데없이 불똥으로 피해를 입는 이들은 없어야 한다.

단 한명의 고급 보안인력을 더 확보해도 부족한 이 때, 정보보안 인력의 사기를 꺽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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