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내 매출 모른다'는 외국계 IT기업 지사장
[디지털데일리 백지영기자] 지난달 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종합감사엔 다국적 IT 기업인 애플코리아와 구글코리아, 페이스북코리아 대표가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름만 들어도 위압감이 늦껴지는 글로벌 IT브랜드들이다.
밤 10시를 훌쩍 넘긴 감사 후반부,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은 이들에게 한국에서 발생하는 매출을 물었다.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물론 예상했던 답변이다.
이같은 얘기는 외국계 IT업계를 취재하면서 늘 들어온 것들이다. 한국 지사의 매출, 직원 규모에 대해 물어도 매번 돌아오는 대답은 “본사 원칙상 알려드릴 수 없다”였다. 실제로 이들 IT기업의 국내 지사장들은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 외부 감사나 실적 공시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 형태로 국내 법인을 운영하기 때문에 실제 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들이 처음부터 유한회사로 법인을 운영한 것은 아니다. 한국휴렛패커드(HP)는 2001년까지 실적을 공개했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2004년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해 왔다. 한국오라클도 지난 2008년까지 한영회계법인을 통해 외부 감사를 받았다. 당시 한국오라클의 매출은 2875억원, 자산총액은 2492억원이었다.
유한회사들은 주식회사와 큰 차이 없이 영업을 하면서도 감사를 받지 않는다. 유한회사로 운영할 경우 매출, 영업이익, 배당금, 로열티, 접대비, 기부금 등 민감한 재무정보를 공시할 의무가 없어 규제당국의 감시를 벗어날 수 있다.
특히 상당수 외국계 IT 기업은 국내 영업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을 배당, 로열티 명목으로 본사로 송금하면서도 국내에 대한 기여도는 거의 없어 비판을 받아왔다. 때문에 유한회사로 전환해 경영상태를 감추고, 이같은 비판을 피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물론 전체 외국계 IT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한국IBM이나 SAP코리아, 한국 델 EMC, 한국후지쯔 등은 매년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때문에 매출이나 영업이익, 직원수, 진행 중인 소송건 등 현안을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하지만 내년이면 이같은 상황은 달라질 듯 보인다. 지난 9월 28일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하 외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존 유한회사로 운영 중인 대부분의 외국계 IT기업의 국내 법인도 감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이는 1년 후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대한상공회의소가 구체적인 대상과 회계정보 공개 범위를 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업의 주요 가치 중 하나인 ‘지속가능경영’을 실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신뢰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이번 외감법을 통해 외국계 IT기업이 국내에서 단기적 경영 성과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질적 발전 전략을 추구하길 기대한다.
<백지영 기자>jyp@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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