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취재수첩] 허름한 금고 속에 쌓인 가상화폐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혹자는 지금이 기회라며 집도 팔고 차도 팔았다. 어떤 이는 대출까지 신청해 현금을 마련했다. 중·고등학생들은 용돈을, 노인들은 쌈짓돈을 건넨다. 이러한 돈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다.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은 열풍을 넘어 광풍에 가깝다. 어느 자리를 가든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뜨거운 주제다. 주변에 한 명씩은 가상화폐로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었다”고 말한다.

꺼지지 않은 등대처럼 사무실을 밝히고, 동이 트기 전에 출근해 저녁이슬을 맞으며 퇴근하는 일반인들에게는 이러한 성공담은 로또보다 높은 확률의 강력한 희망으로 다가온다.

결혼은 대출이 해주고, 서울 바닥에 내 집 하나 마련하기 힘든 팍팍한 삶에 3포 세대까지 나온 마당이다. 저녁이 있는 삶을 포기하든 월급을 포기하든 양자택일해야 하는 삶을 산다. 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월급쟁이가 평생 모아도 손에 담지 못하는 돈을 단 몇 개월만에 벌었다는 소식들이 난무하니, 평범한 이들도 흔들린다고 털어놓는 것을 이 시대에서 누가 나무랄 수 있겠는가.

문제는 부자를 꿈꾸면서도 피땀 모은 돈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는 개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시세 급락으로 인한 손실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금전을 노리는 수많은 해커들이 가상화폐 지갑에서 코인을 빼돌리고, 거래소를 파산시킬 정도의 공격을 퍼붓고 있다.

가상통화는 중앙은행이 가치를 보장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다. 은행과 카드사, 보험사 등 국내 금융권에서 해킹 문제가 터져 금전적 손해를 입으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지만, 가상통화는 그야말로 종이조각처럼 사라질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장의 수익에 집중할 뿐, 자신들의 돈이 자물쇠도 없는 허름한 금고에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안전장치가 없다면 비닐하우스에서 돈을 쌓아놓고 노름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돈을 잃어도, 누가 훔쳐가도, 뺏어가도 정부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돌려받을 수도 없다.

정부는 지난 9월 총 10개 거래소를 대상으로 사이버보안 및 개인정보보호 체계점검을 실시한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보안의 기본도 안 된 취약한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금융권에서 기본적으로 시행하는 망분리와 접근통제조차 미비한 실정이다.

금융권 수준으로 보안시스템을 갖췄다고 주장하는 곳도 가상화폐 거래소 사이에서만 괜찮은 편이지, 전체적인 보안관점에서 본다면 완전하지 못하다. 점검 후 시정조치를 권고하고 나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킹으로 인해 거래소 ‘유빗’이 파산한 바 있다.

심각성과 파급력이 점차 커지자 지난 20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상통화 관련 긴급대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와 방통위는 개인정보보호와 거래소 보안에 역점을 뒀다.

이제 거래소들은 정부의 지침대로 보안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물밀 듯이 들어오는 사이버위협을 방어하고 이용자들의 자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발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그들이 말하는대로 투기판이 아니라 미래가치를 담은 곳이라면, 보안수준도 걸맞게 갖춰야 한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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