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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안 쓰면 나가라고 했다"… 청호나이스, 부당노동행위 피고소

이형두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계열사를 통한 간접고용을 두고 청호나이스와 소속 설치수리기사(이하 기사) 간 갈등 골이 깊어지고 있다.

청호나이스 기사 노동조합이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고소했다.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정한 기준으로 계열사 나이스엔지니어링 입사를 강요했으며, 각 현장에서 계약서 작성 강요가 횡행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를 거부한 기사는 업무 배제 등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한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강규혁, 이하 서비스연맹)은 고소장을 서울고용노동청에 제출했다고 29일 밝혔다.

고소장에 따르면, 지난 21일 청호나이스 서서울 사무소 송화섭 본부장은 노조 조합원 박 기사가 시용계약서 및 서약서 작성을 하지 않았다고 하자 갑자기 고압적인 태도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라'고 했다는 내용 등이 적시됐다.

이후 23일부터 해당 박 기사의 담당구역은 다른 엔지니어로 교체되고 현재까지 모든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박 기사의 수입이 끊겼다. 서비스연맹은 이를 사실상 해고 통보로 보고 있다.

앞서 박 기사는 본부장과 면담 과정에서 시용계약 등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노조 가입의사를 밝히고 노동조합과 상의 후 결정하겠다고 통보했다. 서비스연맹은 이 사건이 노조법 제81조 1호에 따라 ‘근로자가 노동조합에 가입 또는 노동조합의 업무를 위한 정당한 행위를 한 것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불이익을 준 행위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업무배제 전과 후 비교사진
업무배제 전과 후 비교사진

◆‘본부장 자발적 과잉 충성’ vs ‘회사의 노-노 갈등 유발’ = 노조 측 법무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여는 조세화 변호사는 본부장 개인 차원의 행동이 아니라고 봤다. 청호나이스가 직간접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조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본부장들은 청호나이스 방침과 지시를 따라야 할 위치에 있고, 업무 배제는 청호나이스가 관리하는 시스템에서 발생했다”며 “본부장이 청호나이스 측에 사유를 설명하고 상의가 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노조 측은 녹취록을 제시하고 있다 . 이 녹취록에는 또 다른 본부장이 기사에게 “나는 회사에서 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라며 “기간까지 계약서가 본사로 안 들어가면 이후 계정을 다 뺄 테니 그런 줄 알라”는 회사 측 지시 정황이 드러나 있다.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본부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호나이스 기사는 엔지니어, 매니저, 본부장(EA) 3가지 직급으로 나뉜다. 지난 4월 계열사를 통한 간접고용 이슈 초기에는 본부장들 역시 기사들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나 5월 중순 회사가 본부장들만 시용기간 없이 즉각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본부장들이 적극적으로 회사 편을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회사가 직접 나서는 대신 본부장을 앞세워 ‘노-노’ 갈등을 의도했다는 것.

이도천 청호나이스 노조 위원장은 “본부장들도 최초 3개월 시용기간을 뒀을 때는 본인들이 더 나서서 노조 설립을 알아보고 다녔다”며 “그런데 회사에서 정규직 전환을 시켜주자 태도가 돌변, 전국 31명 본부장들이 거의 똑같은 멘트로 ‘일 할래, 안 할래’ ‘월급 안 준다’ ‘지역 변경한다’라며 엔지니어들을 협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본부장을 통한 강권 외에도, 회사 차원에서 불이익을 예고하기도 했다. 지난 21일 나이스엔지니어링이 기사들에게 보낸 전체 문자에는 “계약서 미제출로 인해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책임은 귀하에게 있다”는 내용이 있다. 문자의 발신번호는 청호나이스가 과거 기사들에게 각종 안내를 전달하던 전화번호다. 계약서 작성 강권이 두 회사의 양해 하에 이뤄졌다는 정황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 측은 청호나이스와 나이스엔지니어링의 부당노동행위 공모 과정에 대한 강제수사 및 전국적인 근로계약서 작성 강요 등 부당노동행위 실태에 관한 수사를 노동청에 요청한 상태다.

◆기사들은 계열사 정규직 고용 왜 반발하나… 문제는 ‘시용기간’= 비정규직 신분이었던 기사들이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유 중 하나는 정규직 전환에 앞서 거쳐야하는 ‘시용기간’이다.

청호나이스 계열사 나이스엔지니어링에 입사한 기사는 1년 경력 이하 엔지니어는 12개월, 1년 이상은 6개월, 매니저 직책은 3개월의 기간제 계약 후 평가를 거쳐 정규직이 된다. 나이스엔지니어링은 노조 측과 면담과정에서 ‘근로 계약 전환 과정에서 시용계약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청호나이스 측은 “시용 기간 중 고객들과 큰 문제, 회사와 신뢰를 저버리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100% 다 정규직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측은 “그 발언 자체가 시용기간이 평가 등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근거”라며 “자의적으로 ‘회사와 신뢰를 저버리는 기사’를 판단해 잘라내겠다는 의미”라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불리한 계약 조건에 항변하는 기사, 노조에 가입된 기사를 집중적으로 겨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번 사건 역시 예고편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이도천 위원장은 “최근 회사 측이 제시한 나이스엔지니어링 취업규칙을 살펴보면, 해고를 임의적으로 할 수 있는 조항이 32개에 달한다”며 “최근 정부 차원에서 정규직 전환 압박이 커지자, 자회사 고용을 통해 퇴직금 등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꼼수에 불과하다”며 꼬집었다.

최근 인터넷 설치기사 등 유사 특수고용직들의 경우 근로자로 인정받아 퇴직금을 받은 판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청호나이스 역시 정규직 전환 조건으로 퇴직금 포기 합의서 작성을 강요했다는 의혹도 있었으나, 논란이 일자 이를 철회했다.

이 위원장은 “나만 해도 청호나이스에서 26년을 근무했고, 본부장들보다 연차가 훨씬 긴 엔지니어들도 수두룩하다”며 “우리는 시용기간을 통해 도덕성, 기술력 평가를 받아야하고, 본부장은 인성 검증이 필요 없다는 것부터 모순”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청호나이스 관계자는 노조 측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모두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하며 “청호나이스는 기사들과 대화를 통한 갈등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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