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디지털혁신’ 뼈아픈 좌절…문제는 꽉막힌 관료주의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총회 사진 찍어 법무사에게 내고, 50명에게 서명 받고, 4년을 고생해서 비영리 사단법인 설립했더니 제약이 보통이 아니다. 정부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는 대상조차 되지 않더라, 응모할 때마다 1차에서 탈락한다. 결국 지난 주 영리법인을 따로 설립했다. 이렇게 해야 우리나라에서는 맞구나 판단했다.”(멋쟁이사자처럼 이두희 대표)
“실개천 징검다리 범람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건너유’ 시스템을 설치했는데, 시 담당자가 바뀌자 도로교통법 준수한 시설물이 아니니 철거하라고 연락을 받았다. 철거했더니 몇 달 뒤 시에서 성공사례로 알릴 계획이니 다시 설치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지금 와서 다시 주민들에게 하자고 하면 진행이 되겠나. 결국 지금 ‘건너유’는 사라진 상태다.”(리빙퓨처랩 천영환 책임연구원)
18일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한국정보화진흥원(NIA) 주최로 열린 ‘디지털사회혁신1번가’ 행사에선 디지털사회혁신(DSI) 활동가들이 현장에서 직면한 어려움들이 쏟아졌다.
DSI는 사회적 난제를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정보통신기술(ICT)로 푸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난제를 정부가 모두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를 잘 아는 지역 주민이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해결 방안을 함께 고민하는 방식이다. 올해부터 신규로 특별교부세 35억원을 투자해 우수 사례를 공모하는 등 정부가 저변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두희 대표는 컴퓨터 교육단체 ‘멋쟁이사자처럼’을 비영리로 운영하고 있다. 기존 학교 수업과 다른 방식으로 컴퓨터 수업을 진행하자는 것이 운영 목적이다. 과거 이 대표가 박사과정 데이터베이스 수업 자료가 10년 전 것과 똑같은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 설립 계기가 됐다. 2013년 학생 수십명 대상으로 시작했던 사업은 현재 한 기수 1200명 규모로 성장했다.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해 월매출 7~8억원 수준까지 성장시킨 대학생도 있다.
이 대표는 비영리법인으로 DSI 사업을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정부 부처 담당자들이 비영리법인에는 금전적 지원을 적게 해도 된다는 사회적 편견이 있다는 것이다. 사업 담당자가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라고 봤다. 1년 동안 담당자가 3번이나 바뀐 적도 있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매번 처음부터 설명을 다시 해야 했다.
이 대표는 “미국 국무부, 한국 미래부와 함께 일을 해보면서 두 정부의 차이를 많이 느꼈다”며 “미국은 스폐셜리스트를 지향, 담당자가 한 번 맡은 사업을 끝까지 진행하고 프로그램 교육 관련해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 ‘무의’는 휠체어 여행과 이동권 개선에 힘쓰는 단체다. 대표적인 활동으로 서울 지하철 교통약자를 위한 환승 지도 제작 사업이 있다. 휠체어, 유모차, 캐리어 등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안내한다. 현재 33개역 58개 구간 지도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체 지하철의 15% 정도다.
홍윤희 무의 이사장은 “서울 지하철은 여러 사업자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 환승 경로가 굉장히 복잡해, 역무원도 환승길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더욱이 오프라인 환승로 안내는 걸을 수 있는 사람 위주로 구성돼 있어 교통약자들 이용이 더욱 어렵다”고 전했다.
지도를 만들려면 보통 역마다 10만원 정도 비용이 소요된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앱) 디자인과 역 조사에 드는 비용이다. 대부분 홍 이사장의 사비로 충당했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법인을 만들려 했으나 허가까지 시간이 수개월 이상 걸려 영리 협동조합으로 시작했다. 이 때문에 기부금을 후원받기 어려워 개인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상황이다.
홍 이사장은 “최근 서울시나 여러 부처에서 관심을 가져주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각 부서마다 도와 줄 수 있는 부분이 제한돼 있다고 얘기한다”며 “교통공사, 코레일, 민간을 코디네이션 해줄 수 있는 기관이 없어 협업이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 오히려 저희에게 이런 부분을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무원 조직의 경우 협업 시 예상되는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점이 이런 칸막이 행정 문제를 가져온다고 본다”며 “아울러 이를 위해 공익사업이 가져오는 소셜임팩트를 수치 형태로 계량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이에 과기정통부 김정삼 정보보호정책관은 “부서 간 칸막이, 담당자 교체 문제는 과거 미래부 시절부터 느껴왔던 문제점들, 지속가능한 모델을 찾아야 한다”이라며 “기업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민관이 같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어, 많이 노력하고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답변했다.
<이형두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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