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장절벽에 빠진 전방산업, 영웅이 필요한 시기
[디지털데일리 이수환기자] 지금의 반도체 호황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 선제투자의 성격이 짙다.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자율주행차 등을 대비해 데이터센터를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효율을 위해 같은 면적에서 더 많은 메모리와 스토리지를 사용해야 하므로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체의 수익성이 갈수록 좋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반설비가 아닌 세트제품은 상황이 좋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중국 스마트폰 시장이 역성장을 기록했고 올해 1분기는 전분기보다 21% 규모가 감소했다. 다른 분야는 어떨까. PC는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노병’ 취급이고 TV는 간신히 외형만 유지하는 수준이다. 태블릿, 웨어러블 기기는 신선함이 떨어졌다. 이 와중에 제품 교체주기는 길어졌다.
그렇다고 뾰족한 돌파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마트 기기 시대를 열어젖힌 애플이 과감하게 100만원이 훌쩍 넘는 아이폰 텐(X)으로 승부를 걸었으나 소비자의 지갑은 생각만큼 열리지 않았다. 150만원에 육박하는 스마트폰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사실만 확인됐다. 애플이 이런 상황이니 다른 업체는 오죽하랴.
이는 폴더블폰 시대의 불안감을 키우는 요소다. 화면을 접고 돌돌 말아 쓴다고 해서 뭔가 획기적으로 바뀌리란 기대감이 사라져서다. 마치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하는 이유만으로 등 떠밀리 듯 운동을 강요받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시장에서 고가 스마트폰이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이상 폴더블폰이 나오더라도 상징성은 얻을지언정 돈은 제대로 벌지 못할 수 있다.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성,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과거 이런 상황이 벌어질 때면 ‘영웅’이 등장했다. 당시와 달라진 점은 그때 엑스트라나 조연에 불과했던 우리 기업이 이제는 주연급으로 올라섰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영웅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 중압감은 오롯이 스스로 견뎌야 하고 자격을 증명해야 한다.
최근 대한민국 수출 포트폴리오가 망가졌다는 이야기가 많다. 이른바 10대 수출품목에서 반도체와 평판디스플레이·센서와 같은 첨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반대로 자동차, 조선, 무선통신기기 등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결방법은 새로운 영웅, 스타 제품을 만드는 일뿐이다. 그리고 그 일은 더는 세트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후방산업이 함께 고민해야 할 이슈다.
<이수환 기자>shulee@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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