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1번가의 커머스 ‘포털’ 선언… 脫네이버 가속화?
[디지털데일리 이형두기자] SK플래닛에서 독립한 11번가가 3일 새 출발을 알렸다. 운전대는 인공지능(AI) 전문가 SK텔레콤 서비스플랫폼 사업부장 출신 이상호 대표가 맡았다.
이상호 대표는 3일 오전 서울스퀘어 사옥에서 열린 출범식에서 “11번가는 쇼핑정보 취득, 상품 검색, 구매 등 쇼핑과 관련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쇼핑의 관문인 ‘커머스 포털’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자상거래를 뜻하는 ‘커머스’에 굳이 ‘포털’을 붙인 것은 탈(脫) 네이버 전략의 하나로도 풀이된다. 그동안 11번가를 비롯한 오픈마켓은 네이버와 불편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 네이버 검색을 통한 이용자 유입의 비중이 상당하지만, 네이버가 직접 이커머스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서 힘의 균형이 네이버 쪽으로 기울어진 탓이다.
네이버는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지위와 낮은 수수료를 무기로 온라인 쇼핑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다. 산업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네이버 쇼핑의 거래액은 4조6000억원으로 이베이코리아(약 13조7000억원), 11번가(9조원)에 이어 업계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성장세가 가팔라 올해 2위 자리까지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자체 간편결제 서비스 ‘네이버페이’가 급성장하면서 독자적인 판매 채널로서 입지를 다졌다. 오픈마켓 입장에서는 견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는 최근 네이버와 오픈마켓 사이에서 불거진 ‘불공정 행위’ 갈등과도 무관치 않다. 이베이코리아는 네이버를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불공정거래 행위’를 하고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네이버 스토어팜과 네이버페이를 이용하는 판매 사업자 상품이 검색 결과 상단에 노출되도록 우대했다는 주장이다. 11번가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속으로 이베이코리아와 같은 불만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네이버 가격비교 서비스를 경유해 들어온 이용자가 오픈마켓에서 결제할 경우 발생하는 2~3%의 수수료도 부담이다. 온라인 쇼핑 이용자 약 30%가 가격비교 서비스를 통해 상품을 구입하며, 오픈마켓이 네이버에 지불한 수수료는 연간 10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수수료 부담이 커짐에 따라 11번가는 올해 3월부터 이 수수료를 판매자에게 부담시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동일 제품일 경우 네이버와 가격경쟁에서 수수료만큼 뒤쳐진 상태에서 시작하게 된다.
11번가가 PC와 모바일 플랫폼에서 네이버의 그림자를 벗어나긴 어렵다. 따라서 모회사인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누구’와 연계성을 강화해 보이스커머스(Voice Commerce) 플랫폼을 선점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지난 6월 SK플래닛 분사 당시 11번가는 ‘한국형 아마존’을 지향한다고 밝힌 점, 이상호 11번가 신임 대표가 SK텔레콤 재직 당시 누구 서비스를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아마존은 AI 비서 스피커 ‘에코’를 통해 보이스커머스 시장을 빠르게 확장 중이다. 에코를 이용하면 스피커에 손 댈 필요 없이 대화만으로 아마존 프라임의 모든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RBC캐피탈마켓은 아마존 에코 및 알렉사 사용이 늘어나면서 오는 2020년 아마존 이용자 1인당 구매 금액이 최대 15%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11번가는 앞서 지난해에도 SK텔레콤 ‘스마트홈’과 협력을 통해 사물인터넷(IoT) 기술 쇼핑 ‘나우 오더’를 출시한 바 있다. 버튼만 누르면 생필품을 주문해주는 아마존의 ‘대시버튼’을 벤치마킹한 기술이다.
이 같은 쇼핑 플랫폼 이용자를 확보할 경우 검색 서비스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울러 보이스커머스는 음성 안내 특성 상 모바일 쇼핑보다 선택지가 좁다. 특정 상품을 구입하게 유도하거나 11번가 PB(Private Brand)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인할 수 있는 영향력이 증대된다.
11번가 관계자는 “‘커머스 포털’이 특정 업체를 의식한 표현은 아니지만, 쇼핑 정보, 상품 검색 등 서비스 등 네이버쇼핑이 갖고 있는 강점은 상대적으로 11번가가 부족하다고 불 수 있는 부분”이라며 “이 부분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새로운 11번가의 목표”라고 말했다.
또 “누구 등 AI 스피커를 통해 보이스커머스 시장 경쟁력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하게 보고 있지만, 당분간은 커머스 본원적인 경쟁력 강화에 무게를 둘 것”이라며 “11번가 및 다른 서비스 개선 작업이 선행될 것이며, 다른 구체적인 서비스는 차근차근 만들어 갈 예정”이라고 보탰다.
<이형두 기자>dudu@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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