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금융권에 대형 차세대시스템 구축은 눈에 띠지 않는다. 업계에서는 올 한해가 금융권의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지는, 한번 쉬어가는 해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올해는 빅뱅방식의 차세대시스템 구축에서 시스템 별로 단계적으로 개발을 하는 새로운 형태에 대해 금융권의 고민이 진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는 않다. 은행의 경우도 3기 차세대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고 있고 증권업계에서도 장비 노후화로 인해 새로운 시스템 개발 요구가 있어 시스템 구축 방법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어져야 한다. 디지털데일리는 새로운 금융 차세대시스템 구축에 대한 전망과 현 상황을 분석해본다<편집자>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의 대형 은행을 비롯한 주요 금융사들은 차세대시스템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다. 모든 것을 일거에 개발하고 오픈하는 우리나라의 차세대 방식 보다는 필요한 시스템을 개발해 확장하는 구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시스템이 유연해야 한다. 물론 아직도 메인프레임 기반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해외 금융사들도 있지만 이들 역시 정보계 등은 유연한 시스템 구축을 통해 그때 그때 시장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대형 차세대시스템의 명맥이 끊이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금융사의 경우 시스템을 세분화하고 필요에 따라 해당 부분을 교체하고 운영 측면에서 주요한 업그레이드가 이뤄지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규모 급의 개발 사업이 통상 10년 주기로 진행되는 것이 관행화되고 있다.
◆금융 차세대, 조직논리에서 부자유=이는 서버 등 장비 노후화와 IT신기술에 대응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데다 금융사 내의 정치적인 역학관계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매출 등 주요한 실적을 창출하는 것 외에도 대형 시스템을 오픈했다는 ‘타이틀’에 대해 의외로 조직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금융사들의 화두가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조직에선 해당 분야에 대한 실적과 성과를 ‘포장’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문제는 금융사들이 자신들만의 특화된 서비스를 위해 차세대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과거 은행권이 금융결제원의 공동금융시스템이나 증권업계의 코스콤 파워베이스 기반의 원장 시스템을 공유하고 있을 때는 이러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빠른 상품 개발과 고객 확대를 위해선 시스템의 속도와 유연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공동 시스템을 운영하는 경우 약점을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자금과 조직이 뒷받침되는 대형 금융사를 중심으로 독자 시스템 구축이 이어졌으며 이제 은행권의 경우 이것이 정형화된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 폐쇄적인 시스템 구축 성향이 금융사들을 위주로 정형화됐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자사 시스템에 대한 외부 공개에 대해 폐쇄적이 되고 자신들만의 특화기능을 개발하는데 함몰되고 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한 IT서비스업체 관계자는 “금융 대외계 시스템을 구축하다 보면 자기들은 다른 은행과 다르다고 하지만 사실 90%는 대동소이 하다. 특히 계정계의 경우 거의 모든 구성요소를 공통모듈로 만들어도 될 정도”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선 자신들의 시스템 결과물을 ‘제품화’를 위한 모듈시스템으로 구성하는데 인색하다. 이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다른 금융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금융시장의 특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국내 금융권에서 다른 금융사의 시스템 중 일부를 이식하거나 받아들인 경우는 제한적이다.
◆자신만의 시스템 강조문화 없어져야=외국계 보험사 중 일부가 국내 보험 차세대시스템의 결과물을 이식한 경우와 카카오뱅크가 전북은행 시스템을 기반으로 시스템을 구축한 경우가 전부다.
이는 금융그룹의 IT자회사들이 외부 사업을 확대하는데 있어서도 제약사항으로 등장한다. 국내에서 활발하게 외부 사업을 수주, 진행하고 있는 곳은 IBK기업은행의 자회사인 IBK시스템이 거의 유일하다. IBK시스템도 외부 사업의 대상이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공금융 시장에 국한돼 있다. 물론 캐피탈 시장 등 외연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은행권 사업의 경우 공금융이라는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시장으로 한정돼 있는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차세대시스템 수행 능력 부문에서 금융 IT자회사가 경쟁력을 쌓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금융IT자회사들이 시스템 운영(SM)에 집중하다 보니 시스템을 개발하는 SI사업에 한계를 가진다는 문제도 있다.
한 IT서비스업체 관계자는 “태생적으로 SM과 SI는 다르다. 금융사 내부에서 SM조직이 SI와 일을 같이하는 경우가 있지만 옆에서 한 것과 내가 한 경험치는 다르다. 또 SM은 단위적으로 대응하고 운영 중인 시스템의 일부개선에 국한되는 업무에 집중돼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차세대시스템과 같은 대형 사업의 결과물을 같은 동종 업종에 있는 금융사끼리 공유하고 서로 가져다 쓸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특히 올 하반기 오픈뱅킹을 비롯해 금융환경이 개방형으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자신들만의 특색을 강조하는 것은 서비스 단에서 이뤄져야지 인프라단에서 강조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는 차세대시스템 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IT서비스업체들 사이에서도 공론화되고 있다. 각자 수행한 결과물을 생태계에 개방해 개발 기간과 오류를 줄이고 생태계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SK C&C의 경우 금융 차세대 분야 중 마케팅 분야의 경우 일부 모듈을 협력업체들에게 오픈하는 방법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