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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거절한 박정호 SKT 대표, 한국 미디어 생태계 위한 결단

최민지
[디지털데일리 최민지기자] 박정호 SK텔레콤 대표<사진>가 넷플릭스의 제휴 제안을 거절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 최강자인 넷플릭스와 협력을 맺으면 당장의 SK텔레콤 수익은 올라갈 수 있지만, 한국 전체 미디어 생태계 발전에는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박정호 대표는 지난해 말 임원들과 가진 송년행사에서 “넷플릭스에서 제휴 제안이 왔으나, 거절했다”며 “한국 (이동통신시장) 1위와 세계 (OTT시장) 1위가 만나면, 한국 (미디어) 생태계는 망가진다. 생태계가 어느 정도 만들어질 때까지는 손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아직 한국 OTT는 걸음마 단계인 만큼,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우선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이다. 글로벌 OTT 플랫폼이 국내시장에 진입해도, 잠식당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체질부터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9월 SK텔레콤은 미디어 자회사 SK브로드밴드 ‘옥수수’와 지상파3사 ‘푹’을 통합한 국내 대표 OTT ‘웨이브’를 선보였고, KT는 OTT 서비스 시즌을 새 단장했다. CJ ENM은 JTBC와 손을 잡고 OTT 통합법인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 콘텐츠를 독점 공급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LG헬로비전과 OTT 전략을 구상 중이다. 아직은 발전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 있는 모습으로 봐야 한다.

이 중에서 웨이브는 지난해 270만명 월간 사용자를 달성하며 국내 1위를 기록했다. 미디어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박 대표는 웨이브를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체가 협업하는 미디어 플랫폼으로 구축하겠다는 포부까지 내놓았다. 이를 위해 SK텔레콤은 아시아 전체가 글로벌 콘텐츠 제작을 위한 하나의 팀이 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상파와 연합한 웨이브는 국내 대표선수 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SK텔레콤이 넷플릭스 손을 잡아버린다면, 이제 태동하는 국내 OTT시장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군다나, 넷플릭스는 이미 LG유플러스를 통해 국내 진출한 상태다. 독점기간과 구체적인 조건은 비밀유지 계약에 따라 공개되지 않았으나, 넷플릭스가 SK텔레콤에 제휴를 제안한 점을 보면 지난해 하반기 제기된 계약 종료설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현재 LG유플러스는 인터넷TV(IPTV)를 통해 넷플릭스를 서비스하고 있다. 특히, 국내 통신사와 맺은 계약 조건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망 사용료도 걸림돌이다. 박 대표와 넷플릭스 간 이해 충돌이 일어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3월 주주총회를 통해 “통신사가 넷플릭스를 마케팅 프로그램으로 9:1로 계약해 10%만 벌어가는 전략을 추진하는데, 한국 미디어콘텐츠는 반도체만큼 중요한 사업”이라며 “넷플릭스가 한국 콘텐츠를 고민하는 플랫폼이 되는 것은 국익에 크게 도움 되지 않는다. 미디어 콘텐츠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지는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망 사용료의 경우, 넷플릭스는 LG유플러스에 별도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것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SK텔레콤은 글로벌 CP도 정당한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에 과도한 트래픽에 대한 망 사용료를 수차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방송통신위원회에 재정 신청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로부터 긍정적 회신은 받지 못했다.

지난해 10월 박 대표는 “(구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제공사업자(CP)에게는 망 대가를 확실하게 받아낼 것”이라며 “대형 CP에게 받은 돈을 통해 중소 CP를 육성할 수 있는 지원기금을 만들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물론, 박 대표가 넷플릭스뿐 아니라 글로벌 사업자와 협력에 모두 선을 긋는 것은 아니다. 범아시아 미디어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한 박 대표는 디즈니에도 큰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한국 미디어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방식에 방점을 찍고 있다.

<최민지 기자>cmj@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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