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기자]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반도체 업계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생태계 재편까지 예상된다. 그 중심에는 대만 TSMC가 있다. 일단 미국 편에 선 모양새다.
TSMC는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다. 반도체 설계(팹리스) 업체의 칩을 대신 생산해 돈을 버는 회사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2020년 1분기 시장점유율 54.1%로 압도적인 1위다. 주요 고객사는 미국 퀄컴· 애플· AMD, 중국 화웨이, 대만 미디어텍 등이다.
◆美 대형 고객사 지키기 나선 TSMC=지난 15일 TSMC는 120억달러(약 14조7756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nm) 공정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2021년 착공, 2024년 제품 양산 예정이다. TSMC는 “애리조나 팹은 월 2만개 웨이퍼를 소화하고, 고급인력 1600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이번 프로젝트는 미국 반도체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2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압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및 중화권 등 아시아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처를 미국으로 옮기는 ‘리쇼어링(기업 본국 회귀)’ 차원이다.
현지에 대형 팹리스 업체가 많아, 미국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동안 TSMC는 주요 생산기지를 대만에 뒀다. 미국 워싱턴 팹이 있지만, 규모가 크지 않다. TSMC는 애리조나 공장을 통해 미국 팹리스와 협업을 강화할 방침이다. 5나노 라인이 들어서는 만큼 퀄컴, 애플 등 첨단 공정 수요가 있는 대형 고객사와 시너지가 기대된다.
◆견제 필요한 中 파운드리=다른 시각으로는 중국 파운드리 견제다. 대표적으로 SMIC, 화홍그레이스 등이 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SMIC는 정부 지원에 힘입어 급성장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 14나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수주하는 등 성과를 냈다. 지난 1분기 매출액 9억9000만달러(약 1조2218억원)를 기록, 역대 최대치를 달성했다.
최근 SMIC는 국가집적회로(IC)산업투자펀드와 상하이집적회로펀드로부터 총 22억5000만달러(약 2조7758억원)을 투자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펀드는 정부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자급률 높이기에 나선 중국의 SMIC 육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사실상 화웨이 물량은 중국 업체로 넘어가는 수순이다. SMIC는 10나노 이하 공정이 없어, 최신 제품은 아직 TSMC가 전담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중국 특유의 자국 업체 몰아주기가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가 잠재적 경쟁자인 셈이다. 미·중 갈등으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TSMC 입장에서는 미국을 택한 것이 실리적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로서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 미국과 중국 모두 잡으면 좋겠지만, 정세상 한 곳을 택해야 하는 처지”라며 “어차피 비중이 줄어들 화웨이보다는 미국 대형 고객사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