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암호화폐 예치만 하면 디파이? ‘중개자 있는’ 디파이가 넘친다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지난해 8월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암호화폐 대출(랜딩) 서비스를 출시한 적이 있다.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시장이 막 꿈틀대던 때였다. 여러 언론과 커뮤니티에선 바이낸스가 디파이 시장에 진출했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바이낸스는 암호화폐를 금융 서비스에 이용했을 뿐,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를 출시한 건 아니었다. 바이낸스라는 분명한 중앙기관이 중개자로 존재했다. 때문에 당시 ‘암호화폐 금융과 디파이는 다르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디파이 시장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디파이 서비스에 예치된 금액은 3.5배 가까이 불었고, 디파이 서비스들의 암호화폐가 거래되는 탈중앙화 거래소는 최근 세 달간 거래량이 10배 늘었다. 디파이 서비스들 대부분이 이더리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자 이더리움 상 거래량이 폭증하는 일까지 생겼다.
그런데 디파이 개념은 여전히 혼동되어 떠돌아다닌다. 디파이라고 할 수 없는데도 디파이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프로젝트들이 여전히 많다. 혼동되는 이유가 바뀌었을 뿐이다. 작년에는 디파이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아 오해가 생긴 것이었지만, 지금은 유명해진 디파이 시장에 올라타고 싶어 용어만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암호화폐 빌려주고 이자 주면 다 디파이?
가장 흔한 게 예치 서비스다. 최근 들어 암호화폐를 맡기면 이자를 주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암호화폐가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자산이 되는 건 좋은 일이지만, 문제는 최근 들어 이런 서비스들도 ‘디파이’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발표한다는 점이다. 거래소에서 출시한 예치 서비스까지 디파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도 있다.
대출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위에 언급했던 바이낸스의 대출처럼, 암호화폐를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을 연결하는 ‘중개’ 서비스도 디파이라는 용어를 쓰곤 한다. 암호화폐만 들어가면 다 디파이라고 하는 식이다.
디파이가 ‘탈중앙화 금융’인 이유는 특정 중앙기관이 아닌 블록체인 상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서비스가 구동되기 때문이다. 서비스 대부분의 과정을 블록체인 상에서 열람할 수 있어야 함은 물론이고, 이자율 등 결정이 필요한 부분도 기업이 아닌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특정 기업이나 플랫폼이 암호화폐를 받고 이자를 주는 건 그저 암호화폐 금융 서비스일뿐 디파이 서비스는 아니다. 분명한 중앙기관, 즉 중개자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서비스들을 지칭하는 말이자 디파이의 반대 개념인 씨파이(Ce-fi, Centralized Finance)라는 용어도 있다.
◆디파이 남발하기, 왜 하면 안될까?
“용어가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지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파이 용어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면 안되는 이유는 있다.
우선 디파이의 존재 이유를 흐리는 게 문제다. 스마트컨트랙트 오류나 불편한 UI(사용자인터페이스) 등 문제점이 존재하는데도 디파이 서비스를 개발하는 이유는 탈중앙화라는 분명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컨트랙트를 기반으로 하므로 신뢰를 검증할 필요가 없고, 신용등급과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성장하는 것이다.
메이커다오, 컴파운드 등 잘 알려진 디파이 서비스들이 사용 과정을 복잡하게 개발한 것도 탈중앙화를 위함이다. 예를 들어 메이커다오는 이더리움(ETH) 등 특정 암호화폐를 맡기고 스테이블코인(DAI)를 생성하는 방식으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담보부채권포지션(CDP)이라는 스마트컨트랙트로 DAI의 유동성을 조절한다. 담보 대비 생성 가능한 DAI의 목표값을 조정, DAI 생성 시 맡겨야 할 ETH의 수를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시스템이다.
단순히 기업이나 플랫폼이 대출 금리를 정하는 게 CDP보다 훨씬 편하겠지만 탈중앙화는 사라진다. 때문에 디파이 서비스들은 이런 복잡한 방식을 택하고 있고, 탈중앙화를 지키면서도 사용방법을 단순화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따라서 모든 암호화폐 금융 서비스가 디파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탈중앙화의 의미는 무색해진다.
투자자와 사용자를 위해서도 무분별한 ‘디파이 사용’은 자제해야 한다. 최근 디파이 시장이 성장하면서 디파이 서비스를 사용하고 싶은 사람도 많고 디파이 암호화폐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디파이가 아님에도 디파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자들을 끌어모으는 건 투자자의 알 권리도, 업계의 성장도 가로막는 일이다. ‘리버스 ICO’가 유행했던 때 리버스가 아님에도 마케팅용으로 리버스를 표방하던 프로젝트들은 많은 피해를 낳기도 했다. 디파이 시장에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디파이 용어를 마케팅용으로만 사용하는 경우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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