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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초 지상파UHD 실패…방송사·국회·정부가 망쳤다

채수웅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지상파 방송사들이 세운 세계 최초 지상파UHD 의미가 3년만에 퇴색됐다. 사업자들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결국 정부가 정책을 변경하며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됐다.

이달 9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지상파 UHD방송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안에 관한 건’을 의결했다. 지난 2015년에 마련된 지상파 UHD 방송 활성화 정책을 수정한 것이다. 한마디로 기존에 부여됐던 투자, 콘텐츠 편성비율 등을 완화했다.

2017년 5월 31일 ‘세계 최초 지상파UHD 방송’이라는 화려한 타이틀과 달리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당초 지상파 방송 3사는 2016년부터 2027년까지 총 6조7902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는 2017년 UHD 편성비율을 5% 이상으로 권고하고 2027년에는 100% 편성이 되도록 할 계획이었다. 2021년까지 시군 지역까지 전국망 구축을 확대하기로 했다.

5G와 달리 정부가 UHD 방송을 서두른 것은 아니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700MHz 주파수만 주면 투자도 열심히 하고 콘텐츠도 많이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정부 정책을 수정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 허울뿐인 세계 최초, 국회·정부·사업자 모두 책임
주파수정책소위원회 회의 전경
주파수정책소위원회 회의 전경

이번 정책 후퇴에 대한 책임은 지상파 방송사, 국회, 정부 모두에게 있다.

당초 정부(미래창조과학부)는 700MHz 주파수 할당에 미온적이었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700MHz 주파수로 지상파 방송을 하거나, 하려는 곳은 없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를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통신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자 국회가 개입했다. 700MHz 주파수를 둘러싼 이견이 끊이지 않자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는 2014년 주파수정책소위원회를 구성했다. 미방위 여당 간사인 조해진 의원과 강길부, 심학봉(이상 새누리당), 전병헌, 최민희 의원(이상 새정치민주연합) 등 5명의 의원이 참여했다.

정치적으로 맞섰던 여야 위원들이었지만 주파수 할당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했다. 갈등을 풀어보기 위해 마련된 소위원회였지만 일방적으로 지상파 방송사들의 의견만 대변했다.

"통신보다는 UHD방송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돼야 한다. (전병헌)

"방송산업을 창조경제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려면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심학봉)

결국 미래부는 UHD방송용 4개채널(KBS1~2, MBC, SBS 24MHz폭) 공급방안을 마련했지만 이 마저도 주파수소위에 퇴짜를 맞았다. EBS에는 DMB 대역에서 1개 채널을 공급한다는 방안이 퇴짜의 원인이었다. 결국 미래부는 EBS에도 1개 채널(MHz폭)을 배분했다.

◆ 플랫폼 지위 유지하려던 지상파 방송사

주파수가 마련되면서 지상파UHD 방송 서비스를 위한 본격적인 기반이 조성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7년 5월 세계최초 UHD 지상파 방송이 시작됐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이 제시한 장밋빛 전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3% 남짓한 지상파 직접수신율을 감안할 때 유료방송 재송신이 필요했지만 지상파 방송사들은 직접수신만 고집했다. 유료방송사들도 비싼 대가를 지불하며 UHD 방송을 수신하지 않으려 했다.

UHD 방송을 수신하려면 안테나도 구입해야 했다. 사전에 TV제조사들과 안테나 탑재 등을 논의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당시 관련 토론회서 삼성전자 관계자는 "연간 수천만대의 TV를 판매하지만 내장 안테나가 탑재된 TV는 없다"고 지적했다. LG전자 관계자 역시 방송주파수 특성을 들며 "기술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몇 안되는 시청자들을 위해 지상파 방송사들은 막대한 투자를 단행해야 했다. 투자대비 효율을 맞추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러한 상황이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지상파방송사들이 주파수를 통한 UHD 서비스를 고집했던 이유는 플랫폼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700MHz 주파수 할당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던 2015년 당시 채수현 언론노조 주파수공공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사들도 사업자들이다. VOD가 됐던 재송신이 됐던 (유료방송사들을) 통제할 수 있는 플랫폼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유통망이 없으면 가격을 낮춰서 줄 수 밖에 없다. 적정하게 가격을 제어할 수 있는 도구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상파 방송의 무료보편적 가치를 얘기하지만 UHD KBS1은 의무재송신 대상이 아니다. UHD 방송 활성화를 추진하면서 유료방송과 재송신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전략, 정책의 한계로 지적됐다.

◆ 700MHz 주파수 낭비…정부정책 후퇴 오명

처음 주파수 정책을 마련하면서 정부는 2017년 UHD 편성비율을 5% 이상으로 권고하고 올해 25%, 2023년 50%, 2027년에는 100% UHD 콘텐츠를 편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업자들의 시설투자 이행률은 매년 큰 폭으로 감소했고 의무편성 비율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자가 편성비율을 맞추지 못하자 정부가 리마스터링 비율을 인정해주는 웃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결국 방통위는 2020~2022년 20%, 2023년 25%, 2024년 35%, 2025~2026년 50%로 조정했다. 원래 목표보다 3년이나 후퇴한 안이다. 2027년 이후 최소 편성비율은 콘텐츠 제작여건과 현황, 전망 등을 고려해 결정하기로 했다.

편성비율이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디지털 전환 이후 방송콘텐츠의 고화질화는 예정된 수순이다. 문제는 700MHz 주파수를 통한 지상파 UHD 방송 활성화라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이다.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상파 직접수신 가구 비율이 2.6대에 불과하고 지상파 UHD 수신율은 집계도 안되는 상황인데 실제 지상파 UHD를 시청하는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은 시청자들이 대부분 이용하고 있는 유료방송 플랫폼을 통한 재전송이 유일한 해답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막대한 가치를 지닌 700MHz 주파수는 사실상 놀리는 셈이 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자발적으로 반납하지 않는 한 회수도 불가능하다.

정책을 수정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정책의 실질적 목표인 UHD 방송 활성화와는 여전히 동떨어졌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 보인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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