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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아무도 가상자산 ‘가격변동성’을 보호해달라 한 적 없다

박현영


[디지털데일리 박현영기자] 최근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발언이 꼽힐 것이다.

지난 4월 은 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정부는 가상자산을 투기성이 강한,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으로 보고 있다”며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고 해서 정부가 다 보호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또 “가격이 떨어진 것까지 정부가 책임지라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 발언 직후 20%를 크게 웃돌았던 ‘김치 프리미엄’이 10% 이하로 떨어졌다. 그만큼 국내 거래소에서의 가상자산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는 뜻이다. 때문에 가상자산 커뮤니티에선 3년 전 ‘박상기의 난’에 이은 ‘은성수의 난’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런 파장을 인식한 듯, 최근 은 위원장의 발언은 한 층 톤이 완화됐다. 한 달 만에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의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

은 위원장은 지난주 ‘코리아 핀테크 위크 2021’ 행사에 참석해 “지난 3월부터 개정 특금법이 시행되고 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는 9월 25일까지 (영업을) 신고해야 하고, 신고된 거래소에 고객이 돈을 넣으면 그 돈을 빼갈 수 없게 다 분리된다”며 “(신고된 거래소라는) 틀 안에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투자 자금이 보호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고 해서 정부가 보호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던 발언보다는 톤이 완화된 셈이다.

하지만 이 발언이 타당한 건 아니다. 투자자 보호는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다. 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가 제도권 내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일뿐, 영업을 신고한 거래소에서 거래한다고 해서 투자자들이 부당한 불법행위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다. 영업을 신고한 거래소도 해킹을 당할 수 있고, 해당 거래소에서도 알게 모르게 시세조종이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이 같은 발언이 나온 배경은 추측해볼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과 투자자를 보호하라는 압박은 있는데, 금융위는 ‘가상자산사업자’ 감독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금융위를 비롯한 관계 부처들에게 감독이 어려운 가상자산은 마치 ‘폭탄’과 같다. 서로 ‘폭탄 돌리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금융위는 지난달 28일 밤 10시께 급하게 보도설명자료를 냈다. 이날 있었던 가상자산 관계부처 발표에 따라 “가상자산 컨트롤타워는 금융위”라는 기사들이 나가자, 금융위는 “가상자산사업자의 감독기관”이라며 ‘가상자산’을 컨트롤하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가상자산과 어떻게든 덜 엮이려는 금융위의 입장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다.

은 위원장의 실망스러운 발언은 “자연스러운 보호”에서 그치지 않았다. 은 위원장은 “가상자산 가격 변동은 우리가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이야기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중요한 점은 그 누구도 가상자산 가격 변동을 보호해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가상자산이 가격 변동성이 심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업계가 바란 것은 해킹이나 시세조종 같은 불법행위로 발생하는 투자자 피해를 보호하고, 가상자산 시장을 최소한의 규제 틀 안에 넣어달라는 것이지 가격 변동성 자체를 보호하라는 게 아니다. 코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정부가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가상자산은 전 세계 단위로 거래되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가격 변동성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하다. 투자자들도 가격 변동성이 심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거래소들도 홈페이지에 팝업창을 띄워 매번 가격 변동성을 고지하고 있다.

말 한 마디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다.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기는 하지만, 5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요구를 애써 모른 척하는 정부기관의 입장은 여전히 아쉽다.

<박현영기자> hyun@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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