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칼럼

[취재수첩] 실험대 오른 정부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법’

이종현
[디지털데일리 이종현기자] 작년 공포된 전기통신사업법이 오는 12월 시행된다. 인터넷사업자에게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n번방’ 사건 이후 추진됨에 따라 정치권 및 정부에서는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부른다.

개정법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온라인 커뮤니티, 대화방 등 불특정 다수의 이용자가 부호·문자·음성·영상 등 정보를 게재해 공유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다. 네이버나 카카오를 비롯해 디씨인사이드, 보배드림, 뽐뿌, 루리웹 등이 대상이다. 국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 대부분이 포함된다.

▲전년도 매출액 10억원 이상 ▲전년도 말 기준 3개월간 하루 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등 둘 중 하나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업자는 자신의 서비스에 업로드되는 글·영상·음성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정한 불법촬영물 등에 해당하는지를 식별하고 삭제·제한하는 기술 조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기술적 조치는 정부가 제공하는 기술이나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의 성능평가를 받은 자체 필터링 기술을 뜻한다. 지난 17일부터 민간 사업자에게 제공하는 정부 기술은 영상물의 특징값(DNA)를 추출, 데이터베이스(DB)화한 ‘DNA DB’다.

작동하는 방식은 이용자가 글/영상/음성 업로드 인터넷사업자가 적용한 필터링 기술로 DNA DB와 대조 DNA DB에 일치하는 값이 있을 경우 삭제·차단 등 조치 등이다. 사업자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기존에는 없던 절차(②)가 생긴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는, ②의 적용으로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저하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추가적인 트래픽 발생으로 서비스 장애 및 속도 저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과도한 트래픽으로 발생하는 서비스 장애는 지난 7월 발생했던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 사이트 먹통이 대표적이다.

방통위가 17일부터 민간 사업자에게 기술을 공개한 만큼 ② 과정에서 어느 만큼의 추가 트래픽이 발생하는지, 민간 사업자가 정부가 제공하는 DNA DB를 적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지 등은 차차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만약 사업자에게 큰 부담이 가해진다면 적지 않은 반발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기준 방통위 홈페이지에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한 87개 기업이 적용 대상
올해 기준 방통위 홈페이지에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한 87개 기업이 적용 대상

형평성 및 실효성 문제 해결도 풀어야 할 숙제다. n번방 방지법이라고 불리지만 실제 개정법에서는 n번방 방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n번방의 주요 유포처는 다크웹과 텔레그램인데, 이들 해외 사업자는 법 적용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파라과이에 본사를 두고 있는 ‘나무위키’, ‘아카라이브’를 비롯해 텔레그램과 같이 디지털성범죄물 유포처로 활용되고 있는 ‘디스코드’ 등도 대상에서 제외됐다. 굳이 ‘n번방 방지법’이라는 명칭 대신 ‘디지털성범죄물 유통 방지법’이라고 고쳐쓰는 이유다.

모든 해외 사업자가 열외된 것은 아니다. 국내에 지사를 두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나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틱톡 등은 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해외 기업의 한국지사의 경우 기술지원 및 고객응대와 같은 업무 역할만 하는 곳이 다수이기에, 실제 법 집행력이 발휘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인터넷 시민단체 오픈넷은 지난 3월 해당 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태다. 오픈넷은 사업자가 서비스에서 업로드되는 모든 게시글의 내용을 검토 및 불법성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가능하더라도 과도한 사적 검열로 일종의 사전허가제로 운영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여러 우려, 비판에도 불구하고, 법 시행은 4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법 개정은 이미 이뤄졌고 시행만 앞두고 있기에 적용을 피하기는 어렵다.

공은 다시 민간 사업자들에게 넘어왔다. 17일부터 사업자들도 실제 정부가 제공하는 기술을 적용해볼 수 있게 된 만큼, 법 시행일인 오는 12월 10일까지 테스트 과정을 거칠 것으로 추정된다. 사업자의 서비스에 DNA DB와 같은 기술 적용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종현
bell@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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