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국내 시스템반도체 육성이 본격화했으나 반도체 설계(팹리스) 분야 진행 속도는 더딘 편이다. 미국 제재를 받는 중국보다 부진하다. 전문인력 확보 등을 위한 생태계가 구축되지 않은 탓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팹리스 홀로서기는 쉽지 않아 정부와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업체 등의 지원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9일 시장조사기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팹리스 산업에서 한국 점유율은 1.5%다. 20년 전인 2001년(0.7%)과 비교하면 제자리걸음이다.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을 보유한 미국(56.8%)은 차치하더라도 대만(20.7%) 중국(16.7%)과도 차이가 크다. 대만에는 미디어텍 노바텍 리얼텍, 중국에는 유니SOC 하이실리콘 ZTE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이 포진돼 있다.
국내에는 LX세미콘 에이디테크놀로지 어보브반도체 텔레칩스 등이 있으나 매출 규모가 크지 않다. 작년 연매출 1조원을 LX세미콘을 제외하면 1000억원대 몸집을 갖춘 기업은 5곳에 불과하다.
문제는 성장세가 가파르지 않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에도 다수의 중소·중견 팹리스가 적자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파운드리가 역대급 호황인 것과 대비된다.
업계에서는 중화권 팹리스 모델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미디어텍과 리얼텍의 경우 대만 파운드리 UMC로부터 스핀오프한 기업이다. UMC는 대만 공업기술연구원에서 나온 기업이다. 미디어텍과 리얼텍도 공공 연구기관 출신들이 주축을 이룬 셈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 지원 등이 있었다.
파운드리와의 협업도 필수적이다. 미디어텍 등은 TSMC UMC, 유니SOC 등은 SMIC라는 든든한 동반자가 있었다. 팹리스는 칩 설계 과정에서 여러 테스트가 필요한데 모든 단계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파운드리와 교류가 많을수록 정밀한 검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전략 제품의 경우 우선적으로 생산해줄 수도 있다.
산업연구원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팹리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스피드 및 유연성과 고객과의 친밀한 관계가 중요하다.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파운드리와의 연계도 포함된다.
또 다른 요인은 인력난이다. 최근 국내 팹리스는 반도체 관련 인재를 영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매년 나오는 인원수도 적은데 그마저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디어텍 등은 자국 대기업에 밀리지 않는 연봉을 제시해왔다. 지금이야 회사가 많이 커졌으나 과거에는 그럴 수준이 못 됐다. 정부 지원을 통해 고급 인력을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나라는 메모리 위주로 반도체 시장이 형성돼 시스템반도체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후발주자로서 경쟁국 추격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하고 정부와 기업 간 많은 지원과 협력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