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칼럼

[취재수첩] 인텔 200조원 투자의 교훈

김도현
- 글로벌 반도체 전쟁, 국가적 지원 필수

[디지털데일리 김도현 기자] 반도체 시장이 단순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국가대항전으로 확산했다. 전 세계적인 공급난으로 반도체가 무기화되면서 경제안보 차원의 접근이 이뤄진 영향이다.

미국을 필두로 중국 일본 유럽 등은 영내 반도체 투자 유치를 위해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반도체 제조사가 지역을 고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업은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해 초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사업을 본격화하면서 대형 투자를 예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 1월에는 오하이오 공장 설립 소식을 전했다. 이달에는 유럽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독일 마그데부크르 팹 착공에 돌입한다. 프랑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등에도 생산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다.

향후 인텔은 미국과 유럽 투자규모를 확대할 방침이다. 10년 내 각각 100조원 이상을 붓는다. 총 200조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이러한 파격적인 결정의 배경에는 각국 정부 지원이 있었다.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미국과 유럽연합(EU) 고위 인사를 연이어 만나면서 세제 혜택 등을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큰 선물’을 받았다.

대만 TSMC와 삼성전자도 미국 등에 해외 생산기지를 구축하기로 했다. 지방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인센티브를 확보한 데 따른 결정이다.

반도체 공장 1기를 짓는데만 수십조원이 든다. 삼성전자가 경기 평택에 짓는 최첨단 생산라인 ‘P3’의 경우 설립에 30조원 이상이 쓰인다. 기업이 독자적으로 모든 자금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미국과 EU 등이 반도체 지원 법안을 시행 또는 준비하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유수의 반도체 기업을 보유한 국가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원 정책이 미비하다. 각종 규제와 지역 주민 반발 등으로 공장을 세우는 데 넘어야 할 산도 많다.

SK하이닉스 공장이 들어설 경기 용인 반도체클러스터는 지난 2019년 조성 계획을 인가받은 지 3년 넘도록 첫 삽을 뜨지 못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착공하는 삼성전자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팹은 오는 2024년 완공 예정이다. 국내였다면 현실화하기 어려운 속도다. 인프라 지원 규모에서도 차이가 크다.

오는 7월 시행되는 반도체 특별법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력 양성 방안, 세금 면제율 등이 기대보다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희망적인 부분은 5월 출범하는 새 정부에서 반도체 산업 강화 의지를 드러낸 점이다. 반도체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범정부적인 지원 사격이 필요한 때다.
김도현
dobest@d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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