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테라' 폭풍에 성급해진 정부와 가상자산 업계
[디지털데일리 박세아 기자] 테라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갔다. 투자자들은 내가 들고 있던 자산이 순식간에 0원에 가까워지는 신기루와 같은 현상을 겪으며 분노를 금치 못했다. 금리인상과 인플레이션 등 영향으로 전반적인 가상자산 시장이 위축되는 상황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기에 더 큰 충격이었다.
어떤 사회 현상이든,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면 분노의 화살이 어디를 향할 것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어난다. 때로는 사태의 원인이 아닌 것에 단순한 분풀이 상대로 분노의 방향이 틀어지는 '스케이프고트'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번 사태의 경우 테라 프로젝트를 만든 권도형과 테라폼랩스 등에 1차적인 분노 화살이 돌아갔다. 테라 프로젝트의 사기성에 집중하자는 의견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붕괴가 고의성이 있는지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을 보면, 루나가 공중으로 증발된 것에 대중들의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할 수 있다. 사기 유무와는 별개로 분노의 1차적 대상이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돌아간 간 것은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국민의 뜻을 반영해 법안을 발의하는 역할을 하는 국회도 이번 사태로 가상자산 시장의 규제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가상자산 상장과 거래를 주관하는 거래소를 겨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5대 거래소와 금융당국 수장들을 한 데 불러 모아 긴급 당정간담회를 주기적으로 개최해 사태의 원인을 짚고 향후 유사 사태 방지를 위한 논의의 장을 연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 의도와는 별개로 간담회가 이런 의도를 잘 충족시키고 있는가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수많은 언론과 가상자산 관련 관계자, 금융당국 등이 한데 모여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동상이몽인 모습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가상자산 성격과 이번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테라USD(UST) 거래정지 시점이 너무 늦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가상자산 상장 기준 만들기 등에 골몰하고 있다. 향후 부실 가상자산 상장을 원천적으로 봉쇄해 투자 위험도를 낮추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테라 프로젝트 자체가 국내 블록체인 개발자 사이에서도 유망하고 천재적인 프로젝트로 손꼽혀왔던 만큼, 상장 기준을 단순히 엄격히 만드는 것만이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최근 부임한 금융감독원장은 2차 긴급당정회의에 참석했지만, '시장의 자율에 맡기겠다'는 의미의 원론적인 이야기를 전할 뿐, 어떠한 구체적 방법론도 제시하지는 못했다. 간담회장을 나와 이동하는 중 쏟아지는 기자들의 향후 가상자산규제의 구체적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언급했다. 이는 사태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개인의 역량 문제라기 보다, 정부가 국민적 분노를 해소시키기 위해 빠르게 간담회를 주최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고 해석해야 한다. 가상자산 관련 마땅한 이해도는 물론 규제 법안과 투자자 보호 제도 등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당장 국민의 큰 관심인 이번 사태를 해소시키기 위한 보여주기식 자리 채우기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정부 관계자들의 무조건적 질책에 일단 사후방지책 마련에 황급히 나서는 시장관계자들 모습이다. 당장 공개적인 질책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자자 보호 관련 결과물을 선보여야하는 시장관계자들은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처음 겪는 것임을 감안할 때, 실질적 방안이 빠른 시일 내로 나올 리 만무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2차 간담회에서 나온 5대거래소 공동협의체와 경보 시스템 등 합의안은 이미 몇 년 전에도 있었던 내용이고, 지난해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해 개정을 추진했으나 거래소끼리 합의불발로 크게 진척되지 못했던 합의초안이었다고 전했다. 또 거래소 수장들이 이번 초안 마련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적이 없다는 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볼 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마련을 위한 이번 간담회 자리가 빈 껍데기뿐이었다는 불안감을 키운다.
진정한 투자자보호를 위해서는 정부와 업계관계자들이 단순히 보여주기 식에 골몰하면 안된다. 시일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업계에 대한 이해도를 서로 높이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논의된 것처럼 일단 시장관계자들의 자율 아래 명확한 기준을 만들고, 정부는 이를 제도적 테두리를 통해 의무적 성격을 부여하는 등 관리감독 역할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2차 간담회장에서 한 시장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하기엔 어렵고,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니 생략하고 다른 이야기부터 하겠다"라는 말을 했다. 빠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가상자산 시장이라는 신시장을 만나 정부관계자들이 제대로 사건의 본질을 꿰뚫기도 쉽지않다. 하지만, 제도와 법을 만들고 관리감독을 하는 권한이 정부에게 부여된 만큼, 서로 충분한 대화를 통해 사건의 본질을 숙지하는 것이 우선이다.
간담회 자리가 단순한 분노를 대변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가상자산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투자위험성을 확실히 알리는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제도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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